어제는 명동에 볼 일을 보러 나갔다가 날이 너무 좋아서 종로며 광화문을 좀 걸었습니다. 인사동, 삼청동, 청계천, 덕수궁 정동길까지 대학 시절에는 곧잘 다니곤 했던 마실 코스를 오랜만에 따라 다니면서 을지로입구 북스리브로부터 종로2가 반디앤루니스, 종각 영풍문고, 광화문 교보문고를 들려 책도 보고 다리도 쉬어주곤 했지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서점에서는 당연히 무술서적 코너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무술서적 코너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받은 느낌은 신간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는 것인데, 그 대부분이 태권도 관련 서적이었고 그 내용은 수련생보다는 주로 지도자나 연구자를 위한 것이 많더군요. 도장 경영이나 비만아동/체력강화/경기 지도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책들이 많이 나왔고, 그 밖에 대학 등에서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낸 것도 많았습니다. 반면 태권도 이외의 종목에서의 신간은 수련생을 위한 실용적인 내용의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대조적이더군요. 개중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책을 몇 권 꼽아봤습니다. 


1. <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
- 허인욱 지음, 한국학술정보(주) 펴냄


사실 이 책은 올해 나온 책은 아니고 작년 가을에 나온 것이고 저도 12월에 이미 봤던 책입니다만, 책 소개 글을 쓰는 김에 겸사겸사 같이 소개할까 합니다. ^^;

대한태권도협회 및 WTF로의 통합을 거친 이후 잘 알려지지 못했던 초기 태권도 유파들의 특색이나 수련 내용 등을 담고 있어 보다 구체적인 태권도 역사에 관심을 두셨던 분이라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가라테 이외에도 어떤 무술들이 현대 태권도 기술 체계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개인적으로 '무술의 역사는 사람 이름과 연도로 채워진 계보의 역사가 아니라 기술의 변천사로 접근해야 한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 반가운 내용이었습니다.

후반에는 부록 형식으로 YMCA 권법부 출신으로 최초의 태권도 교본을 쓰기도 했던 박철희 사범이 쓴 <사운당의 태권도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사범께서 말씀하시는 태권도에 대한 가르침은 후학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철희 사범은 택견과도 관련이 깊은 분으로 최근 택견 3단체의 수장들을 모아서 택견 통합을 논의하게끔 중재자 역할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2. <누구나 무술의 달인이 되는 간단한 방법>
- 강준 지음, 오성출판사 펴냄

공권유술이나 강준 관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만, 저는 공권유술이라는 무술이나 강준 관장이라는 인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강준 관장은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현대인들이 무술에 원하는 여러가지 요구사항(솔직, 간결, 다양, 효율, 세련, 안전 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권유술이라는 무술을 창안했고 잘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이런 현대무술이 존재한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특히 강준 관장은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96년에 공권유술을 만들고 2001년 첫 책인 <싸움에서 무조건 이기는 방법>을 펴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총 9권의 책과 8편의 교육용 영상(DVD, 비디오)을 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단일종목에 1명의 저자가 이만한 저술 활동을 해낸 사례가 없습니다. (단지 책 만이라면 한풀의 김정윤 선생이 약 12권의 한풀 교재와 '태견' 책 3종을 펴내기는 했습니다만) 

그 제목의 선정성이나 내용의 수준을 놓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한 명의 무술인으로서 그리고 신생무술의 개발자이자 지도자로서 당당히 자기 연구의 현재를 알리고 세상과 공유하며 피드백을 받아서 발전시켜나가는 활동은 분명 칭찬받을 일이지 비난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은 실제로 공권유술에 입문했을 때 어떤 식으로 수련이 이루어지며 어떤 점에 주의해서 수련에 임해야 올바른 발전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도장이나 단체 사진 등의 내용이 적지 않아 사서 보기에는 조금 아까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혹시나 주변의 평판 등으로 인해 공권유술에 대해 오해하고 계시거나 입문을 망설이는 분께는 이 책이 공권유술의 수련 내용이나 시스템, 마음가짐 등에 대해 오해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듯 하니 한번 쯤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3. <최강의 나를 만드는 실전격투기>
- 최광범/광수/광화 형제 지음, 삼호미디어 펴냄


사실 武Zine 블로깅을 하다 보면 계속 옆에 이 책 광고가 떠서 그러지 않아도 눈에 밟히던 차였죠. 극진가라테 창시자인 최영의 선생의 아들 3형제가 집필했고, 스피릿MC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재선, 유우성, 위승배, 권아솔, 이은수 등)이 참여해서 발간한 격투기 교본(?)입니다.

국내에 종합격투기 붐이 일어난 지도 5년이 넘어서고 있는데 관련 서적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도 안 됩니다. 특히 기술에 대해 전문적으로 다룬 책은 위에 언급한 강준 관장이 쓴 <실전대련테크닉>이 거의 유일무이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역 선수들이 직접 전해주는 종합격투기 기술서가 나왔다는 점은 참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기초체력단련을 위한 훈련법과 영양섭취, 간단하게 익힐 수 있는 단수 20개와 그 위력을 높일 수 있는 단련법, 선수들이 소개하는 중급기술, 그리고 최영의 총재의 일화를 소개하는 4가지 파트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내용은 상당히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올컬러에 깔끔한 편집과 사진 배치는 보기에도 쉽습니다. 특히 저자들이 의학을 전공한 덕에 각종 훈련법이나 기술에 대한 의학적 소견이 덧붙여져 있어 신빙성 있게 다가옵니다.

다만 전체적인 책의 구성을 놓고 봤을 때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집니다. 우선 본격적인 종합격투기 기술서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저자들은 호신을 위한 '싸움에 필요한 몇가지 기술을 쉽게 따라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책의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3부의 선수들이 등장하는 파트는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두의 스피릿MC 관계자 및 선수들의 추천사나 축하말도 좀 무색해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고요. 그런데 또 막상 저자들이 소개하는 단수 20가지에 대해서는 좀 더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고, 부친의 일화를 소개하는 글까지 섞여있다보니 전체적으로 두서가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요. 좀 더 집필 기간을 길게 잡고 내용을 충실히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 <택견겨루기론>
- 김영만 지음, 레인보우북스 펴냄


대한택견연맹 관악구 전수관 김영만 관장이 써낸 택견 경기 기술에 관한 책입니다. 3월 15일자로 책이 나왔으니 아주 따끈따끈한 신간이군요.

택견에 대해서는 그 동안 꽤 많은 관련 서적이 나왔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겨루기 경기와 기술에 대한 전문해설서가 나온 것은 처음입니다. 사실 상 우리나라 무술 서적 전체로 꼽아봐도 태권도, 유도 이외의 종목에서는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군요. (우리나라 무술격투기 저술 활동이 얼마나 비실용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만 요즘 보기 드문 흑백판이고 편집도 좀 밋밋한 편이라 기술서로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의 내용은 택견 경기의 특성, 실제 공방에서 사용되는 기술과 연결 체계, 기술 훈련법 및 단련법, 경기 준비 과정, 심리 요인 및 상담법, 웨이트 트레이닝, 응급처치, 규정 및 심판법에 이르기까지 선수와 지도자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3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중에서도 실제 기술이나 훈련에 관한 내용이 200 페이지 가까이 차지하고 있어 그 동안 경기 위주로 택견을 발전시켜온 대한택견연맹의 저력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비단 택견 뿐 아니라 합기도나 기타 무술 종목의 경기나 도장 교육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한 내용들이 아닐까 합니다.


5. <중국무도지 안휘권>

아마 중국무술에 정통하신 분들도 '안휘권'이라는 무술은 처음 보셨을 듯 합니다. 뭔가 신생 무술인가 싶기도 하고요. 저도 어제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좀 어리둥절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무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 이 책에서 말하는 '무도'란 춤출 '舞'에 밟을 '蹈', 즉 무용이나 춤을 뜻하는 말이었고요, (왜 우리나라에서도 댄스교습소 같은 곳에 곧잘 '무도장'이라는 간판이 붙어있곤 하지요? ^^) 안휘권은 '안휘성 권역'을 뜻하는 것으로 결국 이 책은 안휘성 지역에 전해지는 춤들을 조사하여 정리해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서점 직원들이 책 제목만 보고 어림짐작으로 책을 잘못 분류해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덕분에 잠시 웃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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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14일 일본 신키바퍼스트링에서 열렸던 클럽딥 대회에 출전, 드림 웰터급GP 진출권을 놓고 시라이 유야와 싸웠던 김윤영이 3라운드 2분 59초만에 TKO패했다.

1라운드에는 적극적인 타격 공세와 리버스암바 등으로 시라이 유야를 압박했던 김윤영이었지만, 시라이 유야의 안허벅다리후리기를 허용하는 등 파워에서 밀리는 양상을 보였다. 2라운드에는 두 번이나 마운트포지션을 내주는 등 경기 흐름은 시라이 유야 쪽으로 기울었고, 김윤영은 코피를 흘리기 시작. 결국 3라운드에 또 다시 마운트포지션을 차지한 시라이 유야가 파운딩에 이은 초크슬리퍼를 시도했고, 김윤영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본 키무라 사미요 레퍼리가 경기를 중단시켰다.



시라이 유야는 2003년 프로로 데뷔해 딥, 판크라스, 데몰리션 등 중소규모 단체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지난 2006년에는 스피릿MC에도 출전해 당시 미들급 챔피언이던 임재석을 1라운드 KO로 꺾기도 했지만, 두달 뒤 김대원과 딥에서 맞붙었을 때는 거꾸로 1라운드 KO로 패하는 등 한국 선수와 인연이 깊다.

시라이 유야는 이번이 첫 웰터급 출전으로 원래는 평소 체중이 90kg을 상회하는 미들급에서 연 6회 가까운 경기 일정을 꾸준히 소화하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김윤영은 스피릿MC의 무기한 휴업으로 인해 경기 감각을 유지하지 못하고 체중도 84kg 가까이 불어난 상태에서 갑작스런 오퍼를 받았다. 약 20여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경기를 준비하며 감량까지 해야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 패인으로 분석된다.

더구나 김윤영은 장신의 리치를 활용한 타격과 그라운드에서의 기민한 움직임이 장점이지만 그 연결 고리라 할 수 있는 레슬링 싸움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유도와 삼보 등으로 오랜 활동을 했던 전형적인 일본식 그래플러인 시라이 유야의 파워와 압박감에 밀릴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패배는 김윤영이라는 한 선수에게도 큰 무대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아쉬운 결과이겠지만, 또한 최근 국내 대회의 부재 및 대형 선수들의 부진으로 인해 급속도로 열기가 식고 있는 한국 MMA 전체에 닥친 시급한 문제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9. 3. 14. Club DEEP 시라이 유야 vs 김윤영 경기 장면 (사진제공 : 공카쿠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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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대한민국 격투스포츠의 최고봉 KBL!!
KBL의 명문팀인 전자랜드 김성철 선수가 엘지의 기승호 선수에게 엘보우 공격을 가하는 장면입니다.

느린 장면으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탠딩 상태에서 무방비로 있는 기승호 선수에게 턱아래쪽에 정확하게 엘보우를 꽂아 넣습니다. 이는 무에타이의 고장 태국에서도 자주 볼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기승호는 바로 쓰러져 큰 고통을 호소하고 김성철은 뭘 그 정도에 쓰러지냐며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봅니다.

심판은 김성철 선수에게 오늘은 보여줄만큼 보여줬다며 큰웃음,빅재미를 선사한 김성철에게 집에 가서 쉬라고 퇴근을 명령합니다. 관중에게 빅재미를 선사한 김성철은 더 보여줄게 남았는지 조금은 씁슬한 표정을 지으면서 퇴근합니다. 맷집좋은 기승호도 때 마침 일어나서 연신 턱을 어루만지며 자유투 2개를 성공 시킵니다

그날 밤 멀리 아일랜드에서 UFC가 열렸지만 재미없는 경기가 될것을 예상한 텔레비전은 중계를 녹화중계로 결정합니다. 기다리기 싫어하는 우리의 네티즌들은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비밀 아지트에서 몰래 UFC를 구경했습니다. 하지만 푸른 눈을 가진 슈퍼 코리언인 데니스 강 선수는 전 대회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엘보우를 아끼며 지루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결국 뿔따구가 난 아일랜드의 팬들이 우~ 하며 야유를 보내자 마음이 급해진 데니스강은 묻지마 태클을 시도합니다. 묻지마 태클을 예상했던 상대 앨런 벨처는 길로틴 쵸크를 성공시켜 홍수환 선생님이 이루어낸 7전 8기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습니다.

엘보우는 UFC에서만 보았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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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iIpoto
그동안 좀 바빠서 다른 팀원들이 열심히 포스팅을 하는 동안 별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한 번 낚시를 좀 해볼까 합니다. ^^;

글 제목은 사실 무술이나 격투기를 주제로 한 얘기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그리고 영원한 논쟁거리가 될 이슈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 혹은 무술/격투기 종목들이 자신의 실전최강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종목이 실전성에 대해 의심과 평가를 하는 의견들도 많이 오가곤 하지요.


그런데 무술의 실전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실전' 그리고 '실전성'이라는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실전이란 말을 사용할 때 그 상황이나 개념이 의외로 다양하고, 사실상 실전성 논란이 벌어지는 대부분의 이유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실전에 대한 개념 차이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배울 때는 동작을 정확하고 크게 하지만 실전에서는 간략하고 상황에 맞게 변형해서 쓴다." 라고 말할 때의 실전과, "경기에서는 정면서기가 유용할 수 있지만 실전에서는 낭심을 공격당할 위험이 있다." 라고 말할 때의 실전, 그리고 "실전 최강은 언제든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미국 부시 대통령(-_-)이다." 라고 말할 때의 실전이란 개념은 분명히 크고 작은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무술에 있어서의 실전(성)'이라는 개념부터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흔히 실전성 논란의 여부에 많이 휘몰리곤 하는 한 종목을 실례로 해서 실전성 높은 무술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글 진행 편의 상 높임말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I. 실전이란


무술에 있어서 실전이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구분할 수 있다.

1 - 호신의 관점에서 본 실전
이다. 즉,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나 전투 상황을 모두 실전으로 가정하는 관점이다. 따라서 돌발적으로 상황이 닥칠 수도 있고, 때문에 나는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은 내가 다시 안전해짐으로써 종료되지만, 언제든 제2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쉬운 예로 노상에서의 시비나 기습을 꼽을 수 있으며, 함정은 물론 소매치기, 교통사고, 갑자기 날아온 공에 맞는다거나 미처 발 밑을 보지 못하고 뭔가를 밟는 등의 돌발 상황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2 - 전투로서의 실전
이다. 이것은 실제 전투처럼 싸울 준비가 된 상태(최소한 머리로는 싸운다는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규칙은 없다. 관습 등에 의해 암묵적으로 합의된 룰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가장 쉬운 예로 전쟁, 그리고 무사나 깡패 사이의 결투에서부터 친구끼리 주먹다짐을 벌이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대개 어느 한 편 혹은 쌍방이 전투 의사가 없어질 때까지 싸우게 된다.

3 - 경기로서의 실전
이다. 정해진 규칙과 준비된 상황에서 싸우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격투기'가 사실은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과)격하게 싸운다'라는 '격투(激鬪)'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격투기'의 '격투(格鬪)'는 격식을 갖추고 싸운다, 즉 규칙을 가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승부에 준하는 상황이 오면 실제 상황의 우열과 관계 없이 이길 수 있고, 규칙을 깰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처럼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제3자 또는 제도적/물리적 장치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자에서 후자로 올 수록 의미나 상정하는 범위가 좁아지고 의외성은 줄어든다. MMA는 3이지만 2에 가깝도록 기술적인 의외성의 폭을 최대한으로 넓힌 형태에 해당한다. 그러나 장소, 시간, 규칙, 상대 등이 모두 특정되어있기 때문에 3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대로 격투기 선수끼리의 비공식적인 결투가 벌어졌다면 선수로서의 자존심이나 심리적인 터부 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3의 양상을 띨 수 있지만, 어느 순간이든 그것이 깨질 수 있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2에 해당한다.


유명한 찰스 베넷과 크리스티아노 마르셀로의 백스테이지 격투 장면.
상황 자체는 2지만 당사자들은 무의식 중에 3의 마인드로 싸웠다고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개별적인 경험이나 환경, 이미지 등에 따라 실전의 양상은 더욱 다양하게 달라진다. 예컨대 같은 전쟁 중 백병전 상황이라고 해도 과거의 갑옷과 창칼로 싸우던 시절과 현재의 전투복장과 총검으로 싸우는 상황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각 상황이 유기적으로 연동하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밤거리에서 느닷없이 뻑치기의 습격을 받았다고 하자. 이것은 명백한 1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다행히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지갑만 뺏긴 상태로 뻑치기를 쫓아가다 막다른 골목에서 대치하여 실갱이 끝에 격투를 벌이게 됐다면 상황은 2로 바뀐다. 그런데, (정말 만화 같은 설정이지만 ;;) 그 때 뻑치기 조직의 보스가 나타나서 자기가 운영하는 지하격투클럽에서 깨끗이 주먹으로만 승부를 내라고 한다면 상황은 3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II. 실전성이란

이처럼 실전이라는 개념을 정리해봤을 때, 어떤 무술의 실전성이라는 것은
1) 실전 상황을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가
2) 그에 대비해 기술적/전략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려 하는가

3) 이상의 실전 상황과 대응책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인가

를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호신이라는 관점에서는 사실 실전이 상정할 수 있는 범위가 지나칠 정도로 넓다. 때문에 하나하나의 기술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마음가짐이나 평소 생활 자체에서 위험요소를 배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늘 경계하며 평소 심신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준비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전투나 경기의 관점에서 실전에 임할 때는 나올 수 있는 상황과 기술에 대한 인지 및 숙달, 이길 수 있는 구체적인 전술 등이 중요해진다.

예컨대 복싱 경기에서 아웃파이팅으로 포인트를 쌓아 이긴 나에게 상대가 너무 약이 오른 나머지 갑자기 링 아래에서 발차기나 태클을 해올 수도 있고, 그것이 난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3(경기)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1(호신)이나 2(전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정 가능한 상황이고 대비를 해야한다.

또, 같은 MMA에서라도 타격가는 태클에 대해 주먹이나 무릎으로 카운터 공격을 노리고자 할 것이고, 유술가는 가드포지션으로 끌어들이며 서브미션 역습을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노상에서의 격투라면 눈을 찌르거나, 물거나, 손에 잡히는 돌맹이로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일대다수의 거리 싸움에서는 한 사람의 상대와 오랜 시간 붙들고 싸우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불리해질 수 있지만, 일대일로 진행되는 격투기 경기에서라면 안심하고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며 포인트를 쌓아가거나 상대에게 데미지와 피로를 안겨주어 마지막에 결정타를 날릴 수도 있다.

지난번 K-1 WGP 결승에서 바다 하리의 돌발행동은 1이나 2의 관점에서는 레미가 대응했어야 할 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K-1은 3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므로 바다 하리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 레미가 대응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격투가로서의 자질이나 실전 능력을 의심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각 무술/격투기 종목들은 각자가 이해하고 추구하는 바를 나름대로 정리해 수련 체계를 만들었다. 이 역시 3가지 케이스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거기에 또한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도 하다.

<가> 1(호신)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추도록(혹은 잃지 않도록) 추구하면서, 그를 위한 수단으로서 2(전투)의 상황을 상정한 수련을 하거나 (형, 본이나 대타 등), 현대에 와서 경기성이 강화된 경우는 3(경기)에 맞춘 수련을 병행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른 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무도'임을 강조하는 종목이나 '고류'에 해당하는 종목일 수록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정말로 실전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는 종목이 비슷한 논리로 치장한 수련 체계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 2(전투)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에 주력하는 경우인데, 이른바 '실전'을 가장 많이 강조하는 대다수의 종목이 이에 해당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그에 필요한 기술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용적인 기술을 양산한다. 따라서 대개 상황 별로 술기를 나열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술기의 가지 수가 곧 실전성으로 연결된다는 착각으로 기술의 가지수만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다> 3(경기)에 집중하는 경우다. 기량을 겨룬다는 의미의 '경기'나 격식을 갖추고 싸우는 기예라는 '격투기' 등으로 불리며, 이는 곧 스포츠로서의 경쟁 수단이다. 제한된 조건 하에서 싸울 수 있고(즉 예외적인 케이스를 대비하지 않아도 되고), 정해진 승패의 조건을 채우면 된다. 목적이 분명하고 조건이 구체적인 만큼 그 목적과 조건에 특화된 디테일한 기술이나 단련법이 발달하고 다른 어떤 경우에 비해서도 '싸울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외 상황에 대한 시야나 경험이 그만큼 더 줄어들 수 있다.

70세 노인에게 손만 닿아도 사람이 날아가버리는 믿기 어려운 경지를 보여주는 합기유술, 그 실전성은?  

이와 같은 전제 조건 하에서 어떤 무술의 실전성을 의심하게 되는 이유는,
A. 목적 및 수련 체계 자체가 완성되지 못해 미숙한 경우
B. 수련체계의 전수 및 실천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경우
C. 수련의 목적이나 의미를 상실하거나 오해하는 경우
D. 다른 실전성의 잣대로 평가하는 경우
의 하나 혹은 복합적인 케이스라 할 것이다.

A의 경우는 신생무술이 반드시 겪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종합격투기 상황에서 그래플링보다 타격을 중심으로 싸우려는 종목이 있다고 가정하자. 목적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킥복싱 형태의 입식 타격 기술만으로 수련 체계를 구성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완성되지 못한 체계다. 따라서 그라운드 상황으로 가지 않기 위한 대비라든지, 그라운드 상황에서의 타격 등을 고려하면서 체계를 완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B나 C는 반대로 오랜 역사를 가진 종목에게서 곧잘 볼 수 있는 케이스다. 예컨대 많은 동양의 전통무술들이 현대에 들어서며 과거 해왔던 단련을 제외하고 기술이나 형 위주로만 수련을 함으로써 위력을 갖추지 못한다든지, 아예 전수자가 계승자의 맥이 끊기면서 일부 수련체계나 요결이 전해지지 않는 경우 등이 B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형을 수련하면서 각 동작의 의미를 모르거나 잘못 해석된 것을 전하는 경우나 단련에 해당하는 동작을 실전 기술로 받아들이는 경우 등은 C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D에 해당하는 경우는 해당 종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대부분의 실전성 논란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아이키도나 복싱에 발차기나 발차기에 대응하는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실전성이 낮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아이키도는 <가>에 해당하는 종목이므로 아이키도에서의 실전은 애초에 발차기를 당할 일을 안 만들게끔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상대가 발차기를 못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복싱은 <다>에 해당하므로 애초에 발차기는 고려 대상이 아니고, 발차기를 하면 오히려 지게 된다. 그런데 <나>의 기준에서 이 두 종목을 발차기가 없다는 이유로 실전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고류 무술이나 전투격투술 등에서 현대 격투기를 보고 "저것은 스포츠일 뿐 실전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실전의 관점이 있으므로 타당한 발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스포츠 격투가들과 어떤 상황에서든 싸움을 벌였을 때 우위에 있거나 제압할 수 있다고 단정하거나, 경기에서 패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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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현지 기준) 개최된 WEC37 Torres vs Tapia에서 미구엘 토레스가 16연승을 거둠과 동시에 WEC 밴텀급 챔피언 벨트를 다시 한번 허리에 감았다. 평소에는 서브미션 승리가 많았던 토레스이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원투 스트레이트에 이은 마무리 파운딩으로 2라운드 3분 4초만에 TKO 승리를 거뒀다.

특히 상대였던 매니 타피아는 최근 9연승을 달렸던 상승세의 파이터로 타격전을 즐겨 타격에 의한 승률이 40%에 달하는 스트라이커임을 감안하면 미구엘 토레스의 파이팅 스타일이 얼마나 잘 균형잡혀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경기 내용 면에서도 미구엘 토레스는 하이푸시킥-스트레이트-백스핀블로-로킥 같은 적극적이고 화려한 컴비네이션을 구사했으며, 1라운드에는 나래차기나 앞굴러차기 같은 기술까지 선보이며 마음껏 기량을 뽐냈다.

매니 타피아 역시 2라운드 초반에는 타격전에서 약간 재미를 봤지만 미구엘 토레스의 긴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한 번 허용하고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첫 다운에서는 바로 일어서 경기를 이어나갔지만 다시 한번 원투스트레이트에 다운을 뺏기고서는 일어나지 못한 채 마운트포지션을 내주고 파운딩 세례를 받았고, 결국 레퍼리가 경기를 중단시켰다.


한편 세미파이널 경기에서는 전 IFL 챔피언이자 브라질유술 검은띠인 웨그니 파비아노가 일본 슈토 챔피언 출신인 타무라 아키토시를 시종 그라운드에서 괴롭히다가 숄더초크(암트라이앵글)로 결국 승리를 거뒀다.


[WEC37 전경기 결과]
 

1경기 셰인 롤러 > 마이크 버드닉 (길로틴초크, 1R 1:01)
2경기 컵 스웬슨 > 타카야 히로유키 (판정 3-0)
3경기 바트 팰러스츄스키 > 알렉스 캐럴렉시스 (펀치 TKO, 2R 1:11)
4경기 디에고 눈즈 > 콜 프로빈스 (판정 3-0)
5경기 마크 무노즈 > 리카르도 바로스 (펀치 TKO, 1R 2:26)
6경기 조니 헨드릭스 > 저스틴 해스킨즈 (펀치 TKO, 2R 0:52)
7경기 조셉 베나비데즈 > 대니 마르티네즈 (판정 3-0) 
8경기 브라이언 보울즈 > 윌 리베이로 (길로틴초크, 3R 1:11)
9경기 웨그니 파비아노 > 타무라 아키토시 (숄더초크, 3R 4:48)
10경기 미구엘 토레스 > 매니 타피아 (펀치&엘보 TKO, 2R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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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표도르가 8년 만에 패했다는 얘기가 며칠 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간이 떠들썩한데 비해 표도르 본인은 "지는 일은 흔한 일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고 하는군요. 역시 대인배... 같은 용띠로서 뜨거운 동지애를 느낍니다. ㅋ  -_-;;

어쨌거나 이번 패배의 원인을 두고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는데 첫째는 영화 촬영 등을 통한 훈련 부족으로 경기 감각이나 마음가짐이 느슨해졌으리라는 얘기, 그리고 현재 주력하고 있는 MMA가 아닌 콤바삼보 경기였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크게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 합니다.

(컴배트삼보, 보에보에삼보, 코만도삼보... 뭐 부르는 이름은 여러가지입니다만, 일단 저는 콤바삼보가 국제공식명칭으로 알고 있으므로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참고로 코만도삼보는 주로 특수부대에서 배운다고 해서 붙여진 일본식 명칭인데, 최근에는 군대 등에서 특수목적으로 수련하는 삼보는 스페셜삼보라는 명칭으로 구분하고 있더군요. 일단은 콤바삼보 자체가 경기화됨에 따라 스페셜삼보와 합기도식 호신술과 유사한 셀프디펜스 삼보 등으로 상세 구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미국에서는 타격만 제외하고 서브미션 기술의 허용 범위만 넓힌 프리스타일 삼보라는 것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콤바삼보의 룰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주는 기사나 설명글이 없어서 도대체 콤바삼보 룰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냐라는 질문을 주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대부분 알려진 내용은 스포츠삼보에 타격이 더해졌다는 정도, 그리고 콤바삼보에 대해 소개한 기사에서 보호구와 도복을 착용하고 스트레이트성 파운딩 공격과 클로즈가드를 제한하는 '유사 종합격투기' 정도로 볼 수 있다는 내용 정도가 그나마 상세하다고 할 정보인 듯 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이 '유사 종합격투기'라는 얘기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물론 드러나는 그림 자체는 종합격투기와 유사하므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주 틀린 말이라고 하기도 힘들긴 합니다만, MMA와 콤바삼보가 지향하는 경기 형태나 규칙은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콤바삼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포츠삼보(혹은 아마추어삼보)의 규칙부터 이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스포츠삼보는 다들 잘 아시다시피 유도와 레슬링의 혼합형이라고 봐도 좋을 기술 체계를 가지고 있고 점수 체계에 있어서도 유도의 방식을 기본으로 하되, 레슬링의 포인트 제도를 혼합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선 유도의 '한판' 개념이 계속 살아있어서 메치기로 정확히 한 판을 따면 승리합니다. 그러나 그에 있어서 유도보다 훨씬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있고, 한판 이외의 메치기에는 레슬링의 포인트 제도를 도입해 메치기 형태에 따라 차등 점수를 부여합니다. 그 내용은 공격자와 피공격자의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데, 구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공격자의 상태                   피공격자의 상태                               점수
-----------------------------------------------------------------------------------
메치기 직전,후가 모두 스탠딩    등(양어깨)이 바닥에 닿으면                        한판 
                                            허리가 바닥에 닿으면                                4포인트 
                                            가슴, 배, 엉덩이, 다리, 어깨 등이 닿으면      2포인트
                                            무릎이 닿으면                                          A(액티브)
-----------------------------------------------------------------------------------
메친 후 자세가 무너진 경우      등(양어깨)가 바닥에 닿으면                         4포인트
                                           허리                                                        2포인트
                                           가슴, 배, 엉덩이, 다리, 어깨                        1포인트
-----------------------------------------------------------------------------------
메치기 직전 비스탠딩,             등(양어깨)                                                2포인트
메친 후 스탠딩 상태                허리                                                        1포인트
-----------------------------------------------------------------------------------
메치기 직전,후 모두 비스탠딩   등(양어깨)                                                1포인트
===================================================================================

상당히 복잡하죠... ^^;;

또한 유도에 있는 '누르기'(혹은 굳히기)의 개념을 살려가되, 역시 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합니다. 누르기 자세(피공격자의 등이 닿아있는 상태)로 들어가 10초 지나면 2포인트, 20초면 4포인트가 되고 그라운드 상태가 30초 이상 지나면 '액션' 콜이 나오고 기술이 이어지지 않으면 스탠딩 상태가 됩니다. (관절기가 걸려있더라도 30초 혹은 1분이 지나면 스탠딩, 이 부분은 국제 룰과 일본 룰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1분을 기다리는 것이 국제룰) 따라서 공격적인 그래플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잠깐 사족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G5 등의 영향으로 MMA에서의 그라운드 30초 룰에 대해서 '엉터리'라고 보는 경향이 꽤 있습니다만, 사실 상 이 30초 룰도 삼보의 전통에서 나온 것으로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 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이런 경향이 강한데, 과거 타카다 노부히코, 마에다 아키라, 사야마 사토루 등 초창기 종합형 격투가들이 빅토르 코가 등과 교류하면서 삼보의 기술이나 시스템을 많이 차용했던 결과이지요. 현재도 스맥걸이나 다이도주쿠의 호쿠토기 대회 등, 약간은 소프트하달까 아마추어 성이 강한 MMA 경기에서 주로 적용하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컴배트레슬링이나 슈토 등에도 이 삼보 규칙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메치기나 관절기에 의한 한판을 따거나  12포인트 차를 만들어서 테크니컬 한판승이 되면 이기게 되고, 그 외에는 경기 종료 후 판정에 의해 승부를 가리게 됩니다. 다만, 아마추어 삼보에서는 의외로 금지 기술이 많은 편이어서 조르기는 물론이고 목을 꺾거나 비트는 행위와 힐홀드(힐훅), 토홀드앵클록은 금지 기술로 되어 있습니다. (발등을 잡고 하는 앵클홀드는 인정 - 왜 이런 구분을 두는가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 자세한 설명이 들어가야 하므로 일단 생략합니다.)



콤바삼보는 이 스포츠삼보를 바탕으로 보다 다양한 공격을 허용합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타격은 물론, 스포츠삼보에서 금지된 조르기와 토홀드 등의 관절기가 해금됩니다. (나라에 따라 힐홀드를 여전히 금지기술로 두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는 확실히 종합격투기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종합격투기와 구분되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으니 바로 각각의 기술이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비중이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콤바삼보의 지향점은 기본적으로 스포츠삼보와 같습니다. 따라서 여전히 메치기와 유술기에 의한 승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스포츠삼보와 달리 메치기에 의한 한판승은 없지만 메치기 형태에 따라 4포인트부터 2포인트, 1포인트로 구분되는 점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스포츠삼보의 한판에 해당하는 메치기가 4포인트, 4포인트 메치기가 2포인트 기술에 함께 포함) 누르기 시간과 형태에 따른 포인트 또한 여전히 존재합니다. 12점 차가 벌어지면 테크니컬 한판승으로 승리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상세한 포인트 구분은 각 국가별 단체별로 조금씩 다릅니다만, 이상은 모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거기에 반해 타격은 허용기술이긴 하지만 승부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타격으로 KO를 냈을 경우나 3넉다운 시에 TKO 승이 되고 넉다운 한 번에 4포인트를 주기는 하지만, 일단 상대방이 쓰러지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유효타격을 성공했다 하더라도 점수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타격기술의 허용이나 가격 범위에 대해서도 대회마다 중구난방일 정도로 정리가 안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무릎 공격이나 팔꿈치, 박치기 공격, 누운 상대에 대한 가격 등에 대해서는 대회마다 모두 적용하는 룰이 다릅니다. (일단 국제 룰 상으로는 기본적으로 박치기와 손에 의한 낭심공격 등이 가능하다는 꽤 살벌한! 룰입니다만... -_-;;)

즉, 콤바삼보에서 타격은 유술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실마리수나 빈틈을 노려 한방 승부를 내는 목적으로 쓰인다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본 고류유술에서 말하는 '아테미와자(撞身技, 당신기)'와 같은 기술인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상대의 허점을 이용해 유술기로 상대를 제압하여 승부를 내는 것이 바로 콤바삼보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제 콤바삼보가 종합격투기와는 기본 성격이 다르다는 제 말씀이 이해가 가시죠? (참고로 제가 예전에 삼보의 본질에서 벗어난 변종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 '수퍼삼보'는 이 '유사 종합격투기'란 말이 잘 어울립니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국내에 많이 알려진 '스트레이트성 파운딩'과 '클로즈가드'가 금지기술이라는 내용이 조금 미심쩍다는 것입니다. 사실 국내에 처음으로 삼보 지도자교육이 시작됐을 때 그 내용을 취재하면서 이런 내용을 듣고 기사화했던 것도 저였기 때문에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좀 애매하긴 합니다만, -_-;;;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참에 한 번 정확히 확인해보려고 약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국제규정집과 인터넷 상에 올라와있는 미국이나 일본의 규정 자료 등을 제 나름대로 열심히 뒤져봤습니다. 그런데데 이런 내용이 명문화된 규정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렇다고 당시 초빙되어왔던 러시아 코치로부터 직접 전달된 내용이 잘못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지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아마 명문화된 규정은 아니라 하더라도 해당 룰 상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해서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스타일'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스트레이트성 파운딩의 경우 2006년 세계대회 영상에서 몇몇 선수들이 구사하는 것도 직접 확인했지만, 확실히 자주 나오지는 않습니다. 

또, 클로즈가드에 대해서는 캐치레슬링에서도 가드포지션이 금지 기술은 아니지만 양 어깨가 닿는 '폴' 포지션이라서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삼보 역시 양 견갑골이 매트에 닿은 상태가 누르기에 해당하고, 서브미션을 시도하지 않고 상대를 고정하는 행위는 감점 대상이기 때문에 (삼보의 고착 상태는 MMA에서 말하는 그것과는 달리 매우 빨리 선언됩니다. 심지어 팔을 잠시 쉬게 하기 위해서 머리 등으로 상대를 누르는 행위조차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클로즈가드는 매우 불리한 자세이고 기피할 수 밖에 없는 포지션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단 위의 내용은 개인적인 추론이므로, 확실해질 때까지 계속 확인하겠습니다. 사실 쓰려고 했던 주제는 콤바삼보는 MMA와 비슷해보이지만 그 성격이 매우 다른 종목이라는 건데, 규칙을 일일이 설명하다 보니 이것저것 딸린 얘기들이 나오면서 굉장히 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합격투기와 그래플링이 주로 브라질유술을 바탕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타 유술종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이해가 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격투기 전문웹진의 그래플링 전문 기자도 삼보 규칙이나 경기 방식을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래서 간만에 글을 쓰는 김에 겸사겸사 좀 자세히 써봤습니다. 그동안 궁금하셨던 분들이나 앞으로라도 자료가 필요하실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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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랜디 커투어가 브록 레스너에게 패했다. 1라운드에서 힘에서 밀리긴 했지만 노련함과 기술로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랜디 커투어는 2라운드에서 특기인 더티복싱을 적절히 구사하며 경기를 리드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브록 레스너의 힘은 예상 밖의 결과를 낳았다. '스치고 지나간' 펀치가 커투어를 다운시켜버린 것이다! 결국 레스너의 질풍 같은 파운딩 연타에 야마사키 마리오 레퍼리가 경기를 중단시키며 UFC 헤비급 챔피언 벨트는 MMA 전적 4전 째를 치른 브록 레스너에게 돌아갔다.

팬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던 메인이벤트 못지 않게 이 날 펼쳐진 다른 경기들 모두 전체적으로 화끈하고 흥미진진한 승부들이 이어졌다. 다크매치를 포함해 판정으로 승부가 갈린 경기는 단 하나 뿐이었고, 특히 메인매치였던 제5경기부터 8경기까지는 모두 1라운드에 KO와 서브미션으로 승부가 갈렸다.


▲UFC 91 ‘Couture vs Lesnar’ 경기 결과

(2008년 11월 16일 미국 라스베가스 MGM 그랜드 아레나)

제9경기: 랜디 커투어 X-O 브록 레스너(2R 3:07, TKO/파운딩, 레퍼리스톱)

1R : 바로 스티키핸즈 투 클린치하는 커투어, 양 선수 모두 레슬러 출신답게 치열한 겨드랑이 싸움 벌이는데, 떨어져나오면서 커투어의 라이트훅이 먼저 히트. 태클로 그라운드 노려보는 레스너, 상위포지션을 차지하려 하지만 커투어도 노련한 동작으로 빠져나오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포지션 싸움과 테이크다운 공방 속에 1R 마무리. 타격이 별로 없는 라운드였음에도 환호하는 미국 관중들의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2R : 커투어의 더티복싱이 조금씩 진가를 발휘한다.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사이 브록 레스너의 미간에서 살짝 피가 흐른다. 그러나 위빙으로 피했다고 생각했던 브록의 원투스트레이트가 커투어의 측두부를 스치면서 커투어가 쓰러진다. 그대로 달려들어 사이드포지션에서 헤머펀치와 엘보 파운딩 연타를 쏟아붓는 브록 레스너. 커투어 KO되지는 않고 레스너의 다리를 잡으며 역전해보려고 하지만 너무 많은 파운딩을 허용하자 야마사키 레퍼리가 경기를 중단시킨다.

제8경기: 케니 플로리언 X-O 조 스티븐슨(1R 4:03, 리어네이키드초크)

거리를 유지하려는 플로리언의 펀치를 맞으면서도 밀고 들어가는 조 스티븐슨, 어깨로메치기를 멋지게 성공시키지만 플로리언 빠져나온다. 이어진 클린치 상황에서 먼저 오금받치기로 테이크다운하는 플로리언, 가드패스 후 마운트포지션에서 파운딩으로 백포지션 차지하는 교과서적인 움직임에 이어 리어네이키드초크 성공시키며 경기 마무리.

제7경기: 더스틴 헤이젤럿 O-X 탬던 맥크로리(1R 3:59, 탭아웃/오모플라타+암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장거리 펀치 위주로 경기 풀던 헤이젤럿, 맥크로리가 로킥 캐치하자 가드로 끌어들이면서 오모플라타 시도. 맥크로리 롤링하면서 빠져나가려 하지만 다시 오모플라타 형태를 잡고 맥크로리의 팔을 펴서 밀어 올리며 숄더록암바 형태로 서브미션 성공시키는 헤이젤럿.

제6경기: 가브리엘 곤자가 O-X 조쉬 헨드릭슨 (1R 1:01, TKO/파운딩)

태클 노리는 조시, 펀치로 끊어주는 곤자가. 억지로 클린치하는 조시의 복부에 무릎차기로 그립 풀고 떨어지면서 라이트스트레이트 꽂아 넣는 곤자가. 그대로 쓰러지는 조시, 곤자가는 선 자세에서 파운딩, 레퍼리스톱.

제5경기: 네이트 쿼리 X-O 데미안 마이어(1R 2:13, 탭아웃/리어네이키드초크)

태클하는 데미안, 마운트포지션으로. 일어서려는 네이트의 백마운트 차지, 4자 잠그기로 포지션 굳히고 초크 기회 노린다. 네이트 쿼리 열심히 방어해보지만 결국 초크 내주고 탭아웃.

제4경기: 조지 구르겔 X-O 앨런 릴레이 (3R 경기종료, 판정)

제3경기: 제레미 스테픈스 O-X 라파엘 도스 안조스 (3R 0:39, KO)

제2경기: 앨빈 로빈슨 X-O 마크 보첵 (3R 3:16, 리어네이키드초크)

제1경기: 맷 브라운 O-X 라이언 토마스 (2R 0:57, 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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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동양 삼국이 차이는 있지만 무술과 격투기를 상당히 분리해서 바라보는 반면, 서양에서 무술과 격투기의 개념 분리가 그다지 필요없었던 것은 애초에 서양의 무술은 '격투기'적인 관점에서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즉 이미 서양에서는 순수하게 서로의 격투 기량을 겨루어 발전시키는 '스포츠' 혹은 '경기'적인 '격투기'로서 무술을 발달시켜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현대 스포츠에서는 육상 종목인 투포환,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등이 사실 애초에는 모두 전쟁에서 쓰이는 병기술의 일부가 아니었겠습니까?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런 부분부분들을 오래 전부터 분리시키고 기록 경기로서 점차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달시켰습니다. 격투기적인 부분들 역시 레슬링, 복싱, 검술, 창술 등으로 분리시키고 각자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발전시켜왔는데, 거기에도 경기적 요소를 지대하게 형성했습니다.

중세 기사들이 곧잘 펼쳤던 기마창술 경기를 떠올려봅시다. 그 시대에 이미 그들은 매우 복잡하고 고도로 경기화된 룰을 가지고 기량을 겨뤘습니다. 그러면서 그 '게임'에 걸맞는 독자적인 스킬과 전술도 발전해왔습니다. (결코 실제 전투에서 그런 식으로 싸우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펜싱이나 레슬링 역시 지역적 스타일 등에 따라 그 안에서 또 종목이 나뉘기까지 했습니다.

즉, 서양에 있어서 martialart는 직접적인 전투 혹은 격투를 위한 기술만을 지칭하며 또한 그 기술들을 '게임' 혹은 '경기'로서 발전시켜왔다는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분명한 전투기술인 사격을 스키나 육상, 수영 등과 접목시켜 크로스컨트리 같은 새로운 경기 종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연원은 분명히 군사 훈련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지금 그 종목을 '마샬아트', 즉 병법이나 전투술, 무술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동양에서의 개념 형성 과정은 오히려 정반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거, 동양에서는 흔히 교육 과정의 구분을 '문무'로 양분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라는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무협지의 내용을 떠올려보십시오. 흔히 각 인물들은 각자 독특한 무공을 익히고 나오는데, 개중에 흔히 말하는 경신공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모두 지금의 체육 종목에 다름 아닙니다. 즉, 빨리 달린다든지, 높이 뛰어오른다든지, 헤엄을 잘 치거나, 잠수를 오래 한다든지 말이지요. 즉, 육상이나 수영, 체조 등이 모두 '무공'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흔히 말하는 소림역근경 같은 힘을 기르는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단련법이나 개합공, 참장 등의 신체 조절 능력을 기르는 훈련도 모두 '무공'이라는 단어로 압축됩니다. 활쏘기나 칼, 창과 같은 무기를 다루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밧줄이나 여러가지 도구 뿐만 아니라 화학약품 등을 사용하는 기술이나 능력도 무공입니다. 심지어 멀리 보는 능력이나 귀를 밝게 하는 훈련, 호흡법 등도 모두 무공에 속합니다. 

즉, '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신체를 사용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며 (그것은 결국 개개인의 전투 능력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공'이라는 것은 그것에 관련된 능력 혹은 그 능력을 배양하는 훈련법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술을 잘한다, 무공이 높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도 컨트롤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신체 능력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동양에서 말하는 '무(술)'이라는 것은 뜻 그대로의 '체육(體育:몸을 기름)' 그 자체였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사실상 격투기적인 관점으로는 비실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 마땅한 동양 전통무술의 복잡다단한 수련 체계나 연공법, 기술 형태가 오히려 이해가 됩니다. 결국 각 무술유파는 격투 혹은 전투라는 목적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각자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신체 능력의 구현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때로는 중국 내가권처럼 복합적인 인체 역학의 이해로 발현되기도 할 것이며 일본의 합기계 무도들처럼 어떤 특정 기술 체계의 궁극을 추구하는 형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또 이러한 것들이 동양의 형이상학적 사상과 맞물려서 인체라는 소우주를 통해 보편적 이치인 '理(일본식으로 표현하자면 '이합'이 되겠지요)' 또는 道를 추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면 실제로 격투나 전투와는 관계 없는 동작들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흔히 요사이 '무술의 본질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살상술이다'라는 의견이 많이들 나오고 있습니다만, 모든 것을 발생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현상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을 때 이런 관점으로 돌아볼만하기도 하지만, 무턱대고 애초에 이런 것이었으니 지금도 그래야한다는 것은 그 현상의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어떤 동작이 그 유파만의 어떤 이상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면 그것을 두고 '무술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양의 '무' 라는 개념이 이처럼 폭넓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격투기'라는 것을 구분하여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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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외국인 격투기 관계자들과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다 쥐어짜며 영어로 이야기를 하거나 메일, 기사를 주고 받다 보면 무술과 격투기를 구분해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대충 뭉뚱그려서 얘기할 때야 그냥 martial arts 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흔히 우리는 무술과 격투기가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막상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무술과 격투기의 일반적인 개념 차이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사실 참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디씨인사이드에 처음 격투스포츠 갤러리가 생겼을 때도 '격투스포츠'라는 카테고리명 때문에 이런 논란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생각해보면 저는 대충 이 정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무술 또는 무예라고 할 경우는 일단 동양을 발원지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아닐 경우는 국가 또는 지역적 전통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며 (카포에라나 사바트 같은 경우 브라질 무술 또는 프랑스 무술이라고 하지, 브라질 격투기 또는 프랑스 격투기라고는 잘 표현하지 않지요. 그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독련 형태나 기공, 무기술 등 포괄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고 소위 형이상학적인 무도 정신, 때에 따라서는 신비주의에까지 치닫는 '도'에의 성취가 강조됩니다.
 
반면 격투기라고 하면 어느 정도 서양을 발원지로 하거나 외래 스포츠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고 상당히 현대적인 냄새를 풍기면서 거의 맨손 대련이나 겨루기 경기 중심의 종목을 칭하는 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역시 형이상학적인 목표보다는 보다 실천적인 성과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기는 합니다만, 격투기라고 하면 뭔가 무술에 비해 수준 낮은 싸움으로 보는 경향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권도, 유도, 택견 등의 겨루기 중심의 스포츠성 강한 종목도 굳이 전통성을 강조하며 무술로서 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동양 삼국의 개념도 상당히 다르지요. 일본에서는 '무도'가 아닌 '무술'이라고 하면 고류 쪽을 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류의 경우는 주로 독련이나 약속대련과 같은 형 중심의 수련 방식이 주가 됩니다. 

무도라는 표현을 우리가 칭하는 무술 또는 무예의 개념이라고 본다 해도 격투기와의 구분은 얼핏 우리와 비슷한듯 하면서 또 다릅니다. 실제로 경우에 따라서는 검도 같은 종목도 격투기로 칭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겨루기 경기가 중심이 되는 종목을 격투기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라테 등도 특히 풀컨택트 유파인 경우는 무도라기보다 격투기로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고, 앞서 예를 들었던 카포에라나 태권도도 일본에서는 격투기로 보지 무도로는 보지 않습니다. (유도의 경우, 경기 유도와 그렇지 않은 유도를 구분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기 유도 단과 코도칸(강도관) 유도 단을 굳이 구분하는 경우를 종종 봤거든요.) 즉, 전통성을 중심으로 하는 구분보다는 실제 수련 방식이나 경기 방식에 기준을 두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격투기라고 해서 수준을 낮춰 보는 시선은 상당히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오히려 고류나 무도 쪽이 격투기보다도 더 실전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보는 흔히 격투기가 더 실전적이라고 하는 우리와는 좀 차이를 보이는 관점이 꽤 일반적입니다. 그것 역시 격투기가 '경기' 중심, 즉 죽음을 걸고 싸우는 '시아이(사합/시합)'이 아닌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 룰 안에서 싸우는 모의 전투/스포츠라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겠지요.


중국은 아예 격투기라는 표현을 찾아보기가 무척 어려운데, 대신 박격이나 산수, 산타라는 표현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듯 합니다. 중국에서의 격투기에 대한 인식 역시 그야말로 '현대적인 맨손 겨루기 중심의 경기 스포츠'라는 것을 보여준달까요. 어떤 면에서는 가장 구분이 명확한 동네가 중국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결국 모두 '우슈(무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포함된 하부 개념, 즉 전통권, 규정 경기투로, 경기 산타, 경찰/군용 산수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라서 어찌 보면 또 가장 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중국인 듯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시 서양으로 돌아가 보자면, 서양의 무술은 애초에 겨루기 중심이되 규칙이 있는, 즉 스포츠성이 강한 쪽으로 발달이 되어왔습니다. 복싱, 레슬링, 펜싱, 사바트, 심지어 기마창술까지...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가장 신종 격투기라고 할 수 있는 MMA라는 단어 자체도 mixed martial art 이듯이 결국 서양에서는 굳이 무술과 격투기의 구분이 필요없는 것도 당연하겠다 싶습니다. (복싱과 같은 classic한 종목 측 인사들이 MMA를 비하하는 의미로 무규칙 - No Hold Barred의 싸움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만 )  

대신 굳이 필요하다면 동양에서 유입된 무술들을 (oriental 혹은 Korean/Japanese/Chinese) traditional martialart 라고 표현해서 복싱, 레슬링, 펜싱 등의 서양 무술과 구분하는 정도인 것이겠지요. 또, 간혹 fight sports나 ring sports라는 영어 표현도 있습니다만, 이것 역시 동양적인 관점에서 자기 수련 중심인 무술과 경기 중심의 격투기를 구분하고자 만들어낸 표현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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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예전에 MBC ESPN 주간 격투기 매거진 프로그램 'RINGSIDE'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당시 K-1 중계와 서울대회 개최 등으로 한창 격투기 붐을 이끌어 가던 MBC ESPN에서 야심차게 시작했던 매거진 프로그램이었지요. 반응도 꽤 좋았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장수 프로그램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격투주가, 격투예보 등의 고정코너를 맡고 있었는데,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제작진과 첫 미팅을 가졌을 때의 일입니다.  


진행을 맡았던 정우영 캐스터(가운데)와 이동기 해설위원(오른쪽), 그리고 '자칭' 미녀리포터 김보라 리포터(왼쪽) 


실제 격투기 경험이 전무한 담당 작가 두 분과 리포터 한 분으로부터
"선수 이름은 외울 수 있고, 기술 이름이 뭔지는 찾아보고 공부하면 되겠는데요. 뭐가 좋은 기술이고 어떤 장면이 명장면이고 어떤 경기가 명승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격투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보는 눈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받고 언뜻 떠오르는 생각에 반농담처럼 다음과 같이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맞을 때의 쾌감과 때릴 때의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라고요.


그 자리에서는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을 못해서인지 우스개 소리에 거의 변태 취급을 당했습니다... -_-;;;; 
그런데 느닷없이 나온 말이지만 곰곰이 곱씹어볼 수록 제가 생각해도 꽤 절묘한 표현이 아닌가 싶더군요. ^^ 

먼저, 단순히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기술을 익히고 단련을 힐 때는 내가 질 때를 생각하면 두려워지고, 때문에 오히려 싸울 자신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기격을 할 때에도 자신이 공격할 때는 언제나 상대의 반격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 이것을 인지하고 늘 경계하게 되는 것이 바로 때리는 두려움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것을 잘 극복하면 빈틈 없고 냉정한 기술을 펼칠 수 있는 것이고 그러지 못할 때는 자기 페이스를 잃고 허점을 보이게 되겠지요.

한편, 오히려 맞는 것이 즐거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왠지 매저키즘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_-) 흔히 얘기하는 '완벽하게 패하면 오히려 기분 좋게 납득하고만다.'는 말이나 지는 것을  두려워 말아라'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인데요. 처음 기술 하나하나를 배울 때부터 급기야 대련에서 기술을 시험해볼 때에 이르기까지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그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게 되는 순간이 있지요.

합기 고수의 술기를 받으며 나가떨어질 때 '아, 이것이 완벽한 기술이구나'라고 감탄하게 되고, 가라테나 무에타이 고수의 로킥에 허벅지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와, 이게 진짜 로킥이구나.'라고 감탄하게 되는 그 느낌! 이건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묘한 쾌감이죠.

상대의 실력을 존경하고, 내 실력이 이만큼 모자라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 때부터 맞는 것은 더 이상 그냥 맞는 것이 아니고 그조차도 하나의 공부가 된다고나 할까요. 그 순간의 고통, 그 순간의 패배는 그대로 나의 성장으로 이어진단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 쯤 되면 급기야는 브라질유술가나 서브미션 레슬러에게 꺾이면서도 '봐주지 말고 진짜로 꺾어줘 봐'라고 요구하게 되지요.;; 왜? 아프더라도, 상대 기술을 조금이라도 더 100%에 가깝게 느껴보고 싶기 때문에! (그래서 옛날 선생님들은 곡 '맞아봐야 안다', '꺾여봐야 안다'라고 하셨는지도... -_-)

 그런데, 이 맞는 즐거움은 의외로 마약 같은 데가 있어서, 그냥 당하고만 있어도 자기 실력까지 올라간다고 착각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위 실력 좋은 지도자나 강하다고 소문난 종목의 수련생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경우죠. 그리고  맞는 즐거움에 빠져들어서 맞는 것이 버릇이 되거나 아예 '으악새' 전용의 시범맨이 되는 것도 곤란하겠지요. 

설마 그런 걸 즐기는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의외로 꽤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때리는 두려움을 끝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약간 삐딱하게 빠져버린 경우죠. 즉, 자기 자신이 강해질 생각이나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 채, 나는 여기서 만족해, 좋은 기술 받으면서 공부나 하면 되지 뭐.. 라고 자기합리화를 한달까요. 

때리는 두려움과 맞는 즐거움... 모두 그 자체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나 반드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극복해냈을 때 자신과 상대를 가감 없이 볼 수 있음으로써 더 강해질 수 있는 과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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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