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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일본하고만 싸운 것 같은 WBC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결과는 좀 아쉽습니다만, 저로서는 어쨌든 WBC가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한 느낌입니다. WBC 기간 동안 격투기 쪽 이슈들은 도통 관심을 못 받았으니까요. 심지어 오늘은 최용수 선수가 K-1 코리아맥스에 결장한 진짜 이유가 부상이 아니라 계약 문제 때문임을 밝힌 일요신문 유병철 기자의 단독 보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뉴스 순위에 오르기는 커녕 '언저리뉴스'에서 취급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WBC 결승전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메인에도 오를 법한 기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비단 WBC 뿐 아니라, 월드컵 경기라든지 최근에는 또 김연아 선수가 출전하는 피겨스케이팅 대회가 있다거나 하면 아무리 큰 격투기 대회가 있다 하더라도 관심은 온통 그 쪽으로 쏠리고 맙니다. 실제로 지난 주말 센고쿠에서 멋진 승리를 얻어낸 정찬성이나 코리아 맥스에서 임치빈과 이수환이 만들어낸 극적인 격투 드라마들은 모두 제대로 주목 받지 못한 채 어느새 WBC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죠.
이게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팬층의 규모 자체가 다른 종목들인 만큼 야구나 축구 같은 인기 종목과 동일선상에서 취급될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격투기 팬이자 관련 업계에 발담그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런 인기종목들의 큰 대회가 있을 때면 '아, 또 당분간은 무술이나 격투기는 찬밥 신세가 되겠군' 싶어서 저도 모르게 약간은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나마 "우리나라는 야구/축구가 망해야 다른 스포츠가 산다'고 투덜거리기도 하죠.
다음 스포츠뉴스 섹션은 아예 타이틀블록이 WBC로 장식되어 버렸죠.
최용수 선수의 K-1 불참 속사정 기사는 언저리뉴스로...
(페이지가 길어서 캡처 후 가운데 허리는 좀 들어냈습니다.)
최용수 선수의 K-1 불참 속사정 기사는 언저리뉴스로...
(페이지가 길어서 캡처 후 가운데 허리는 좀 들어냈습니다.)
사실 정말로 서운한 감정이 마구 치솟을 때는 다름 아닌 격투기 팬이나 관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무술이나 격투기를 뒷전으로 할 때입니다. 몇년 전에 인터넷TV 형식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맞짱스테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탤런트 P씨가 진행을 맡았고 저는 격투뉴스를 전하는 리포터로 고정출연을 했었는데요. 하루는 방송 시간에 축구 경기(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한일전이었던 듯 합니다.)가 겹치게 됐습니다. 뭐 당연히 다들 축구 경기의 경과에 관심이 쏠려있었죠. 그런데 진행자 P씨가 생방송 직전이었나, 오프닝 멘트에서였나 불쑥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우리 그냥 방송 접고 1시간 동안 다함께 축구 응원을 하죠! 모니터로 축구 좀 틀어줄 수 없어요?"
물론 뭐 그 말은 우스개소리로 받아들여졌고, 방송은 차질 없이 잘 진행됐습니다. 사실 P씨도 그다지 격투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팬이나 마니아 혹은 관계자라고 할 만한 사람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나름 격투기 계에서 신선한 시도였던 프로그램이었고, P씨 또한 프로그램에 투입될 당시 상당한 의욕을 보여줬던 것이 사실이며 일단은 격투기 프로그램 진행자라는 입장에서 가지고 있었어야 할 책임감도 있었을 터인데 그렇게 쉽게 '격투기보다 축구가 중요하다, 격투기 방송 접고 축구 응원을 하자'라고 말하는 것이 저로서는 참 서운했더랬습니다.
이런 경험은 비단 P씨의 사례 외에도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심지어 심판 교육 중에 축구 중계 보고 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죠. -_-a 그런가 하면 나름 격투기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격투기 경기에는 단돈 만원 짜리 티켓 하나도 사기 아까워서 공짜표를 구하거나 그마저도 경기장 가기도 귀찮아 TV나 인터넷 동영상으로 보고 마는 반면,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붉은 악마 티셔츠에 각종 악세사리까지 다 사서 거리 응원에 나가서는 택시 타고 들어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봤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접할 때면 그나마 격투기 좋아한다는 사람들, 혹은 격투기로 벌어먹고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조차 이러니 참 격투기의 인기라는 게 보잘 것 없구나 싶어서 쓴웃음을 짓곤 합니다.
주절주절 말이 많았습니다만, 위에도 말했듯이 이게 뭐 잘못됐다거나, 축구 야구에 더 관심 갖고 애정을 쏟는 분들을 나무라고자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각자의 취향과 선택의 문제니까요. 그저 WBC가 끝났으니 이제 관심 좀 받아볼까 하는 생각에 쓰는 넋두리였습니다. ^^ (옛다, 관심~! 해주실 분들은 추천이라도 꾹 -_-ㅋㅋ)
덧붙임 : 사실 '맞짱스테이션'의 진행자 분 이름은 실명으로 썼다가 아무래도 좋은 얘기 하는 건 아닌지라 이니셜로 바꿨습니다만... 저렇게 쓰고 보니 왠지 더 '나쁜놈'으로 만든 거 같기도 하네요. -_-;; 그저 개인적으로 '서운했던' 사례를 하나 들었을 뿐, 결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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