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동양 삼국이 차이는 있지만 무술과 격투기를 상당히 분리해서 바라보는 반면, 서양에서 무술과 격투기의 개념 분리가 그다지 필요없었던 것은 애초에 서양의 무술은 '격투기'적인 관점에서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즉 이미 서양에서는 순수하게 서로의 격투 기량을 겨루어 발전시키는 '스포츠' 혹은 '경기'적인 '격투기'로서 무술을 발달시켜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현대 스포츠에서는 육상 종목인 투포환,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등이 사실 애초에는 모두 전쟁에서 쓰이는 병기술의 일부가 아니었겠습니까?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런 부분부분들을 오래 전부터 분리시키고 기록 경기로서 점차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달시켰습니다. 격투기적인 부분들 역시 레슬링, 복싱, 검술, 창술 등으로 분리시키고 각자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발전시켜왔는데, 거기에도 경기적 요소를 지대하게 형성했습니다.
중세 기사들이 곧잘 펼쳤던 기마창술 경기를 떠올려봅시다. 그 시대에 이미 그들은 매우 복잡하고 고도로 경기화된 룰을 가지고 기량을 겨뤘습니다. 그러면서 그 '게임'에 걸맞는 독자적인 스킬과 전술도 발전해왔습니다. (결코 실제 전투에서 그런 식으로 싸우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펜싱이나 레슬링 역시 지역적 스타일 등에 따라 그 안에서 또 종목이 나뉘기까지 했습니다.
즉, 서양에 있어서 martialart는 직접적인 전투 혹은 격투를 위한 기술만을 지칭하며 또한 그 기술들을 '게임' 혹은 '경기'로서 발전시켜왔다는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분명한 전투기술인 사격을 스키나 육상, 수영 등과 접목시켜 크로스컨트리 같은 새로운 경기 종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연원은 분명히 군사 훈련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지금 그 종목을 '마샬아트', 즉 병법이나 전투술, 무술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동양에서의 개념 형성 과정은 오히려 정반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거, 동양에서는 흔히 교육 과정의 구분을 '문무'로 양분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라는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무협지의 내용을 떠올려보십시오. 흔히 각 인물들은 각자 독특한 무공을 익히고 나오는데, 개중에 흔히 말하는 경신공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모두 지금의 체육 종목에 다름 아닙니다. 즉, 빨리 달린다든지, 높이 뛰어오른다든지, 헤엄을 잘 치거나, 잠수를 오래 한다든지 말이지요. 즉, 육상이나 수영, 체조 등이 모두 '무공'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흔히 말하는 소림역근경 같은 힘을 기르는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단련법이나 개합공, 참장 등의 신체 조절 능력을 기르는 훈련도 모두 '무공'이라는 단어로 압축됩니다. 활쏘기나 칼, 창과 같은 무기를 다루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밧줄이나 여러가지 도구 뿐만 아니라 화학약품 등을 사용하는 기술이나 능력도 무공입니다. 심지어 멀리 보는 능력이나 귀를 밝게 하는 훈련, 호흡법 등도 모두 무공에 속합니다.
즉, '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신체를 사용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며 (그것은 결국 개개인의 전투 능력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공'이라는 것은 그것에 관련된 능력 혹은 그 능력을 배양하는 훈련법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술을 잘한다, 무공이 높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도 컨트롤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신체 능력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동양에서 말하는 '무(술)'이라는 것은 뜻 그대로의 '체육(體育:몸을 기름)' 그 자체였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사실상 격투기적인 관점으로는 비실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 마땅한 동양 전통무술의 복잡다단한 수련 체계나 연공법, 기술 형태가 오히려 이해가 됩니다. 결국 각 무술유파는 격투 혹은 전투라는 목적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각자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신체 능력의 구현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때로는 중국 내가권처럼 복합적인 인체 역학의 이해로 발현되기도 할 것이며 일본의 합기계 무도들처럼 어떤 특정 기술 체계의 궁극을 추구하는 형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또 이러한 것들이 동양의 형이상학적 사상과 맞물려서 인체라는 소우주를 통해 보편적 이치인 '理(일본식으로 표현하자면 '이합'이 되겠지요)' 또는 道를 추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면 실제로 격투나 전투와는 관계 없는 동작들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흔히 요사이 '무술의 본질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살상술이다'라는 의견이 많이들 나오고 있습니다만, 모든 것을 발생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현상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을 때 이런 관점으로 돌아볼만하기도 하지만, 무턱대고 애초에 이런 것이었으니 지금도 그래야한다는 것은 그 현상의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어떤 동작이 그 유파만의 어떤 이상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면 그것을 두고 '무술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양의 '무' 라는 개념이 이처럼 폭넓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격투기'라는 것을 구분하여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流雲의 Point of 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홍만 22kg 빠진 것이 악플 탓? (12) | 2008.10.30 |
---|---|
전설적인 무술가들의 일화, 사실은 어쩌면? (8) | 2008.10.27 |
무술과 격투기의 차이 1 - 동양 삼국과 서양에서의 개념 (4) | 2008.10.27 |
맞는 즐거움, 때리는 두려움 (1) | 2008.10.27 |
실제 경기에서 합기도 술기를 쓸 수 있을까? (1) | 2008.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