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무술이나 격투기는 남성의 영역이었습니다. 물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자 무사의 존재도 심심찮게 존재했습니다만, 그 아래에는 남성의 것을 하는 여성이라는 의미에서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히 깔려있죠. 이런 인식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도 할 수 있다'는 부분이 크게 강조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며 여성 무도가나 격투가의 존재도 그다지 낯설지 않게 됐습니다.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는 각 무도 종목이 특정계층만을 상대로 하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체육'으로서 변화해온 것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실질적으로 좀 더 시장을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성을 새로운 소비자로 맞아들이기 위한 무술격투계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른 바 '다이어트'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피트니스적인 효과이고, 또 하나는 보다 고전적이라 할 수 있는 '여성호신술'로의 활용성입니다.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며, 또 그로 인해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수도 있다는 것이죠. 더구나 이런 여성호신술은 힘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으며, 손쉽게 상대를 처리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막상 일반 여성들에게 호신술을 배우길 추천하면 십중팔구는 "그거 배워도 (나는) 못 쓸 것 같다."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또, 현장에서 여성호신술을 배우고 가르치는 지도자에게 물어봐도 "실제로는 쓰기도 힘들고 위험하다. 그냥 도망가는 게 최선이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인지 세간에는 보다 쉽고 효과적임을 강조하는 새로운 호신술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우선은 일반적으로 자주 보여지는 호신술 시범에서 일차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여성호신술 시범은 대개 남성 한둘이 여성 시연자에게 접근하고, 이 때 여성은 몇 번 약한 척(?)을 하다가 호신술을 사용해 상대를 제압합니다. 이 때 사용되는 기술은 대부분 유도나 합기도식의 메치기와 꺾기, 태권도식의 고난도 발차기가 주를 이루고, 때로 하이라이트는 프로레슬링식의 아크로바틱한 공중살법까지 선보이기도 하죠. 물론 이 기술들은 좋은 호신술입니다. (프로레슬링 공중살법은 일단 논외로 하고 ^^;;) 하지만 '여성'호신술로 어떤가 하면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여성은 학교 체육과 취미 활동 이상의 운동 경험, 즉 몸을 움직이고 힘을 쓰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위에서 언급한 화려한 기술 시연은 여성들로 하여금 '정말 여자들도 적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저런 걸 어떻게 해?'라고 오히려 포기하게 하거나 '저런 게 가능해?'하고 부정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더구나 이런 시범은 대부분 약속대련의 형태로 행해지기 때문에 기술을 받아주는 느낌이 강합니다. 사실 여성 시연자가 남자 2명을 한꺼번에 던져버리는 2인처리술이나 발차기 모션 한 번에 과장된 낙법으로 몸을 날리며 쓰러지는 남성을 보면, 대개 '저게 실제로 가능할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죠. 더구나 실제로도 그런 기술이 가능한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많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시범이 이런 '연출'을 가미하는 데에는 그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따로 하도록 하죠.) 그러나 일단 여성호신술의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실제로 호신술을 원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기술, 즉 "아,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시범 기술들은 그런 대입이 어려운 까닭에 오히려 호신술의 실전성에 대한 의심을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호신술의 상황 설정이나 기술 형태, 훈련 방법 등의 비현실성에서 비롯됩니다. 쉬운 예로 국내에 알려진 상당수의 호신술은 첫 단계로 남성이 여성의 손목을 잡는 것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 남성은 손목을 잡은 채 멀뚱히 서있거나, 단순히 손에 힘만 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아주 익숙한, 전통적인 합기도 방식의 손목수 연습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을 추행하거나 강제로 끌고 가려는 남성이라면 손목이 아닌 손 자체를 잡는 경우도 많고 (여러 손가락을 통째로 혹은 깍지낀 채로 잡히면 합기도식의 술기를 사용하기가 무척 어려워집니다), 가만히 잡고 있기보다는 이리저리 끌고 가려고 하거나 다른 손으로 여러가지 행위를 시도할 것입니다. 호신술을 실제 상황에서 쓰기 힘들었다고 하는 경험담을 들어봐도 이와 같은 '예상 외' 혹은 '경험 외'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찌 해야할 바를 몰랐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지나치게 많은 경우의 수에 일일이 다른 기술로 대응하도록 하거나, 또 한 가지 상황에 지나치게 많은 경우의 수를 가르치는 방법 또한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남성이 돌려차기를 할 때 방족술을 사용하는 등 실제로 여성의 입장에서는 경험할 확률이 낮은 상황과 기술을 의례껏 가르치는 사례도 많고요.

그런가 하면 일상적으로 여성이 남성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 경우, 이를테면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 내에서 은근슬쩍 벌어지는 성추행이나 직장 상사에 의한 성희롱 등은 여성 입장에서 매우 분통 터지고 답답한 일이지만 거기서 사람의 팔을 비틀어 꺾거나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때려눕혀서 해결할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이럴 땐 보다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대응 방법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대개의 무술/격투기를 바탕으로 한 여성호신술 프로그램에서는 기존의 '격투적 관점'과 자기 유파의 기술 체계에서만 상황에 접근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자칫 과잉방위나 오상방위 등으로 법적책임을 거꾸로 지게 될 수도 있는 방법을 '정당방위'라는 명분 아래 무책임하게 가르치는 결과를 낳는 경우도 많고요.

'올댓호신술' 어플 실기 촬영 중. 100회 분량의 성폭력 상황에 대한 대응법을
격투기 경험이 전무한 여성 모델에게 현장에서 직접 기술을 전수하면서
하루 만에 촬영을 마쳤을 정도로 ASAP 여성호신술 시스템은 효과적이다.

이런 오류들이 반복되면서 여성호신술은 언젠가부터 단순한 '도장 홍보용 문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이죠. 따라서 제대로 된 여성호신술의 보급을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으로 여성의 입장을 고려한 상황 설정과 실제로 실행 가능한 기술 및 훈련 체계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武Zine과 공도KOREA는 이와 같은 여성호신술에 대한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ASAP(Anti Sexual Assault Program)이라는 새로운 성폭력 예방/퇴치 및 여성호신술 전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지난 여름 제작해 9월에 공개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어플인 '올댓호신술'은 지금까지 6천5백 건이 넘는 다운로드 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다운로드 링크 http://j.mp/dvXi5x  ) 또 기업 사보 연재, 지역 사회체육센터 및 각종 대학과 단체 대상의 여성호신술 특강도 활발히 추진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 본 연재를 통해서도 ASAP만의 현실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여성호신술을 소개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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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일본에서 1987년부터 96년까지 10년 간 인기리에 연재됐으며,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모았던 카와하라 마사토시의 만화 '수라의 문'이 오는 10월 6일자 '겟칸쇼넨마가진(월간소년매거진)' 11월호를 통해 13년 11개월, 거의 14년 만에 '수라의 문 제2문'이라는 타이틀로 다시 연재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수라의 문'은 무츠엔메이류라는 가상의 고류유파의 후계자인 무츠 츠쿠모가 각종 현대 격투기에 도전하며 최강 전설을 입증해나간다는 단순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형을 죽이고 유파의 계승자가 되었다는 설정이나, 고류에는 현대 격투기가 극복하지 못한 실전성이 남아있다고 보는 일본 특유의 판타지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대의 특기 기술에 같은 스타일의 기술로 정면 대응하는 주인공의 격투방식, 거기에 리얼리티를 최대한 반영하려는 격투 장면의 시도 등은 이종격투 만화 스타일의 전형을 제시했다고 봐도 좋을 작품입니다. 



수라의 문 2부 '수라의 문 제2문'의 이미지 컷 [ⓒ 코단샤/카와하라 마사토시]

특히 현실상의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연상시키는 설정은 '수라의 문'의 인기를 더하는 큰 요인이 됐고, 이후 등장한 '그래플러 바키'나 '고교철권전 터프' 등 아류작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컨대 주인공 무츠 츠쿠모가 속세(?)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도전하는 종목은 '신무관 가라테'인데요. 싸움공수니 사도공수라 불리면서까지 만들어온 실전공수도, 그러나 현재는 안면 가격 금지라는 룰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극진공수도를 연상시킵니다. 등장인물들 또한 최영의 총재나 이소베 사범, 프란시스코 피리오 등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며 전형적인 '사대천왕'과 같은 그룹도 등장합니다.

이처럼 '수라의 문'이 연재를 시작하던 당시 최강의 무술이라는 이미지는 의심할 여지 없는 극진공수도의 몫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프로레슬링이 역도산 이후 이노키의 활약을 통해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며 최강을 주장하고 있었죠. 그리고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체되는 극진 스타일의 한계를 지적한 대도숙이나 정도회관이 등장했습니다. 특히 정도회관 이시이 관장이 글러브가라테를 주창하면서 글러브룰 최강론이 힘을 얻자 킥복싱, 무에타이, 슛복싱 등도 흐름을 타기 시작했고, 프로레슬링 쪽에서도 진짜 실전을 지향하는 젊은 프로레슬러들을 중심으로 UWF가 등장한 이후 링스, 판크라스, 슈토 등으로 이합집산을 이어갔습니다. 이 와중에 특히 링스와 정도회관은 다양한 교류전을 통해 본격적인 이종격투 시대를 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수라의 문'은 이처럼 격변하던 당시 일본 격투계의 시대상과 인물들, 그리고 '최강'에 대한 시각 변화까지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년만화인 만큼 정치적인 이해관계 등은 제외하고 상당히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요. ^^


어쨌든 일본 국내에서의 이종격투전을 정복해버린 무츠 츠쿠모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 복싱 헤비급에 도전해 3대 단체 통합 타이틀을 획득하는가 하면, 브라질 발리투도 경기까지 출전해 그레시이유술(극중에서는 '그라시엘로유술')과도 싸워 이깁니다. 그렇게 무츠 츠쿠모의 여정은 일단락을 짓게 되지요. 정확히는 진정한 세계 최강의 남자는 남미 어딘가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여운을 남기는데요. (여담입니다만, 당시 연재를 종결한 것이 아니라 연재를 잠시 쉬는 형태로 마무리됐었는데, 이는 츠쿠모와의 대결에서 레온 그라시엘로가 결국 목숨을 잃기 때문에 주인공을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일본 독자들이 연재 중단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후 작가 카와하라 마사토시는 '무츠엔메이류 외전 - 수라의 각' 시리즈를 부정기적으로 발표하며, 일본 역사 속에서의 유명 인물들과 무츠 가문의 대결을 실감나게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새로운 작품인 '해황기'의 연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죠. (이 만화는 항해술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표현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는데, 실제로 작가 카와하라 본인이 해운학교 출신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본편보다 더 큰 인기를 얻으면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국내에도 방영된 바 있는 '수라의 각' 시리즈

그런데 지난 7월 '해황기'의 연재를 마치면서 3개월 정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수라의 문' 연재를 재개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과연 14년만에 돌아온 무츠는 또 어디서 누구와 싸움을 벌일까요? 일단은 UFC 무대가 될 확률이 가장 높겠죠. 무츠는 언제나 최고의 무대에서 최강의 상대에게 도전을 하니까요.

그리고 무츠와 관련된 캐릭터로 등장할 인물은 료토 마치다가 아닐까 합니다. 이미 작품('수라의 문' 4부나 '수라의 각' 사이고 시로 편)을 통해 마에다 미츠요와 무츠와의 인연이 그려진 바도 있는데, 현실에서 마치다 가문 또한 공교롭게도 30여년 전 수해로 망가졌던 마에다 미츠요의 묘와 유골을 수습했던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마치다는 실제로 또 하나의 일본 무술(공수도)를 매개로 MMA 최강의 자리에 근접한 존재이기도 한데요. 일본 격투 만화에서 이보다 이상적인 소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처럼 반가운 소식에 벌써부터 이런저런 상상으로 기대도 높아지고는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또 걱정도 됩니다. 과연 20세기가 아닌 21세기에 무츠가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죠. 하지만 이미 온갖 현실 배경 속에 완벽히 무츠를 녹아들게 만들었던 카와하라씨의 능력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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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작년 12월 개인적인 일로 호주에 다녀왔던 적이 있습니다. 홍콩을 경유하는 비행기편이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한편 봤습니다. 'WUSHU - the Young Generation'라는 영화였죠. 한자 제목은 '무술지소년행(武術之少年行)'이었고요. 홍금보가 우슈 선생으로 출연했고, 다섯명의 무술학교 학생들이 우슈 수련을 통해 겪는 우정과 성장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 중 한 명이 사귀는 여자친구로 태권도 선수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중국에서 태권도가 인기가 높다더니 역시나 싶더군요.)

중국 본토가 배경인지라 약간은 우리 80년대식 학원청춘물 같은 분위기에 크게 임팩트가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스토리가 너무 억지스럽지도 않고 구성도 뭔가 얘기가 붕붕 건너뛰는 듯한 중국/홍콩영화 특유의 느낌이 덜한 영화라서 보기는 편했습니다. 무엇보다 근래 보기 드문 정통 중국무술 영화라는 점에서 참 반가웠고, 특히 주인공으로 나오는 젊은 친구들의 탄탄한 무술 실력이나 이젠 정말 백발이 성성한 데다 오뚜기 같은 몸매가 되어버린 홍금보가 여전히 날렵한 몸놀림을 선보이는데 감탄했었죠.

어쨌든 당시엔 그냥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때맞춰서 우슈 홍보 영화 정도로 만든 건가 생각하며 지나쳤는데요, 최근 우연히 이 영화를 소개한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 http://hkfilms.tistory.com/106 ) 성룡이 제작을 맡았고 두 젊은 주연 유봉초와 왕문걸이 성룡의 후계자를 찾는 경연대회 출신이라는군요. 오호~ 그런 영화였단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그 때 그 성룡 후계자를 뽑는다는 대회는 어찌 된 것인가 싶어 관련 내용을 좀 찾아봤습니다.


성룡의 후계자로 선발된 도성성(잭 투). 이렇게 보면 약간 권상우를 닮기도?


중국 베이징TV가 성룡의 후계자를 뽑는 리얼리티쇼를 만들기로 했었다는 뉴스가 나왔던 것이
2007년 2월, 어느새 2년 전의 이야기로군요. 그 때는 마침 'TUF'라든지 '컨텐더즈' 같은 격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유행을 시작한 때이기도 했고, 무려 10만명이나 오디션에 지원해 토픽감이 됐었죠. 
 이후 세계 각지의 후보자 128명(!)을 모아서 'The Disciple(후계자)'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이 TV프로그램은 6월에 시작해 7월말까지 2개월 간 방영이 됐었고 최종우승자로는 도성성[涂圣成, Tu Sheng Cheng/ Jack Tu]이 선발됐다고 하는데요. 도성성은 6살 때부터 미국에서 유명한 중국무술 지도자인 아버지 밑에서 엄한 수련을 거쳐왔고, 'The Disciple'에서 우승하고서부터는 성룡과 함께 영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후 중국의 전통과 특히 도가 사상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라고 하네요. (단순히 배우로서 출연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작까지 배우는 모양입니다. 진정한 의미로의 '후계자'가 될 듯 하군요.)

성룡의 후계자를 뽑는다는 취지로 방영됐던 리얼리티TV쇼 'the Disciple'의 마지막 회
만리장성을 가로지르는 대규모 세트를 만들어 진행됐었다고

도성성이 미국의 중국무술 잡지 '쿵푸매거진
'과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The Disciple' 쇼는 2007년 3월부터 약 2개월 간 출연자들을 중국 베이징 북부에 있는 숙소에 가둬놓고(!)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차단한 상황에서 하루 3~4시간만 재우면서 혹독한 영화 촬영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와 액션 과제를 테스트했다고 하는데요. 가장 처음 과제는 베이징올림픽 수영장에 있는 10m 높이의 다이빙대에서 그냥 뛰어내리는 것이었답니다. 이외에도 성룡이 자기 영화에서 보여줬던 각종 스턴트 연기 뿐 아니라 노래와 춤 등 다양한 과제를 해내야 했다고 하네요. (인터뷰 원문 
http://ezine.kungfumagazine.com/ezine/article.php?article=784 )

참고로 한 때 오언조(다니엘 우)라는 배우가 성룡의 후계자라고 알려지기도 했었는데요. 오언조가 영화 '야연' 개봉 당시 했던 인터뷰 내용의 일부만 전달되면서 잘못 알려진 듯 합니다. (성룡이 오언조를 발굴해 액션배우 후계자로 키우려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소년지련'이라는 작품성 높은 동성애영화에 출연한 오언조의 연기를 보고 연기파 배우로 노선을 바꾸게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런 내용에 따르면 유봉초와 왕문걸이 성룡 후계자 경연대회 출신이라는 정보는 왠지 신빙성이 좀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해외 영화정보 사이트에서도 그저 '차세대 아시아 액션스타를 발굴하는 프로그램' 출신이라고만 소개가 되어있네요. 하지만 애초에 베이징TV의 계획도 10명 정도의 신인을 발굴하는 것이었고, 다른 해외 뉴스에 따르면 성룡의 영화제작사인 JCE엔터테인먼트사가 도성성 이외에도 약 16명의 출연자들과 계약을 했다고 하니 거기에 포함된 인물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화 포스터에도 두 사람이 무술대회 출신이라는 것만 소개하고 있을 뿐, 충분히 마케팅 포인트가 될만한데도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은 (무려 성룡이 제작을 맡았는데) 여전히 좀 꺼림칙한데요. 도성성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 시기에 'K-STAR'라는 비슷한 컨셉트의 또다른 TV쇼도 있었고 그 자신 또한 거기 출연했었다고 하니 당시에 그런 프로그램들이 꽤 유행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더불어 성룡 뿐 아니라 홍금보도 중국 본토에서 신인을 발굴하는 데 상당히 매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홍금보 주연의 영화 '우슈(무술지소년행)'
좌우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젊은이들이 'The Disciple' 출신으로 얘기되고 있는 유봉초와 왕문걸.
포스터는 좀 강하게 나왔지만 영화를 보면 둘 다 꽤 꽃돌이들이라는... ^^;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영화 얘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홍콩영화 소개 블로그에서는 트레일러 무비의 내용 상 비록 홍금보가 '주연'이라고는 해도 얼굴마담 정도로 나오는 게 아닐까 라고 했지만 사실 영화에서 홍금보는 굉장히 비중있는 역할입니다. 살짝 스포일러를 하자면 -뭐, 지금까지 개봉 소식이 없고, 보기에 따라서는 꽤 심심한 내용이라 국내에서 개봉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 하니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ㅋ - 마지막 유괴범 일당과의 대결에서는 자신의 제자이기도 했던 악당 고수까지 쓰러뜨리니 충분히 주연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특이한 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막상 다섯명의 젊은(어린?) 주인공들은 실제 싸움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무술대회에서의 우승이나 무술배우로서의 활동 등으로 수련의 성과를 보일 뿐입니다. (애초에 악역 고수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설정입니다만 ㅋ) 영화 초반에서도 '남과 싸우지 않고 어떻게 강함을 증명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힘과 정확함과 균형을 갖춘 보다 어려운 동작을 성공시켜 이전의 자신과 싸워 이길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강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지막 대결에서 홍금보가 모든 싸움을 도맡는다는 것 또한 '싸움의 수단으로 무술을 배우는 것은 이제 옛 시대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p.s : 그나저나 도성성의 인터뷰를 보니 'The Disciple' 쇼가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고 싶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TV 등을 통해 방영하면 꽤 반응이 좋지 않을까 하는데 말이죠. ^^a 영화 '우슈'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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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그동안 좀 바빠서 다른 팀원들이 열심히 포스팅을 하는 동안 별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한 번 낚시를 좀 해볼까 합니다. ^^;

글 제목은 사실 무술이나 격투기를 주제로 한 얘기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그리고 영원한 논쟁거리가 될 이슈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 혹은 무술/격투기 종목들이 자신의 실전최강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종목이 실전성에 대해 의심과 평가를 하는 의견들도 많이 오가곤 하지요.


그런데 무술의 실전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실전' 그리고 '실전성'이라는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실전이란 말을 사용할 때 그 상황이나 개념이 의외로 다양하고, 사실상 실전성 논란이 벌어지는 대부분의 이유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실전에 대한 개념 차이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배울 때는 동작을 정확하고 크게 하지만 실전에서는 간략하고 상황에 맞게 변형해서 쓴다." 라고 말할 때의 실전과, "경기에서는 정면서기가 유용할 수 있지만 실전에서는 낭심을 공격당할 위험이 있다." 라고 말할 때의 실전, 그리고 "실전 최강은 언제든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미국 부시 대통령(-_-)이다." 라고 말할 때의 실전이란 개념은 분명히 크고 작은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무술에 있어서의 실전(성)'이라는 개념부터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흔히 실전성 논란의 여부에 많이 휘몰리곤 하는 한 종목을 실례로 해서 실전성 높은 무술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글 진행 편의 상 높임말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I. 실전이란


무술에 있어서 실전이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구분할 수 있다.

1 - 호신의 관점에서 본 실전
이다. 즉,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나 전투 상황을 모두 실전으로 가정하는 관점이다. 따라서 돌발적으로 상황이 닥칠 수도 있고, 때문에 나는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은 내가 다시 안전해짐으로써 종료되지만, 언제든 제2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쉬운 예로 노상에서의 시비나 기습을 꼽을 수 있으며, 함정은 물론 소매치기, 교통사고, 갑자기 날아온 공에 맞는다거나 미처 발 밑을 보지 못하고 뭔가를 밟는 등의 돌발 상황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2 - 전투로서의 실전
이다. 이것은 실제 전투처럼 싸울 준비가 된 상태(최소한 머리로는 싸운다는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규칙은 없다. 관습 등에 의해 암묵적으로 합의된 룰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가장 쉬운 예로 전쟁, 그리고 무사나 깡패 사이의 결투에서부터 친구끼리 주먹다짐을 벌이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대개 어느 한 편 혹은 쌍방이 전투 의사가 없어질 때까지 싸우게 된다.

3 - 경기로서의 실전
이다. 정해진 규칙과 준비된 상황에서 싸우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격투기'가 사실은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과)격하게 싸운다'라는 '격투(激鬪)'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격투기'의 '격투(格鬪)'는 격식을 갖추고 싸운다, 즉 규칙을 가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승부에 준하는 상황이 오면 실제 상황의 우열과 관계 없이 이길 수 있고, 규칙을 깰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처럼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제3자 또는 제도적/물리적 장치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자에서 후자로 올 수록 의미나 상정하는 범위가 좁아지고 의외성은 줄어든다. MMA는 3이지만 2에 가깝도록 기술적인 의외성의 폭을 최대한으로 넓힌 형태에 해당한다. 그러나 장소, 시간, 규칙, 상대 등이 모두 특정되어있기 때문에 3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대로 격투기 선수끼리의 비공식적인 결투가 벌어졌다면 선수로서의 자존심이나 심리적인 터부 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3의 양상을 띨 수 있지만, 어느 순간이든 그것이 깨질 수 있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2에 해당한다.


유명한 찰스 베넷과 크리스티아노 마르셀로의 백스테이지 격투 장면.
상황 자체는 2지만 당사자들은 무의식 중에 3의 마인드로 싸웠다고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개별적인 경험이나 환경, 이미지 등에 따라 실전의 양상은 더욱 다양하게 달라진다. 예컨대 같은 전쟁 중 백병전 상황이라고 해도 과거의 갑옷과 창칼로 싸우던 시절과 현재의 전투복장과 총검으로 싸우는 상황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각 상황이 유기적으로 연동하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밤거리에서 느닷없이 뻑치기의 습격을 받았다고 하자. 이것은 명백한 1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다행히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지갑만 뺏긴 상태로 뻑치기를 쫓아가다 막다른 골목에서 대치하여 실갱이 끝에 격투를 벌이게 됐다면 상황은 2로 바뀐다. 그런데, (정말 만화 같은 설정이지만 ;;) 그 때 뻑치기 조직의 보스가 나타나서 자기가 운영하는 지하격투클럽에서 깨끗이 주먹으로만 승부를 내라고 한다면 상황은 3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II. 실전성이란

이처럼 실전이라는 개념을 정리해봤을 때, 어떤 무술의 실전성이라는 것은
1) 실전 상황을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가
2) 그에 대비해 기술적/전략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려 하는가

3) 이상의 실전 상황과 대응책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인가

를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호신이라는 관점에서는 사실 실전이 상정할 수 있는 범위가 지나칠 정도로 넓다. 때문에 하나하나의 기술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마음가짐이나 평소 생활 자체에서 위험요소를 배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늘 경계하며 평소 심신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준비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전투나 경기의 관점에서 실전에 임할 때는 나올 수 있는 상황과 기술에 대한 인지 및 숙달, 이길 수 있는 구체적인 전술 등이 중요해진다.

예컨대 복싱 경기에서 아웃파이팅으로 포인트를 쌓아 이긴 나에게 상대가 너무 약이 오른 나머지 갑자기 링 아래에서 발차기나 태클을 해올 수도 있고, 그것이 난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3(경기)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1(호신)이나 2(전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정 가능한 상황이고 대비를 해야한다.

또, 같은 MMA에서라도 타격가는 태클에 대해 주먹이나 무릎으로 카운터 공격을 노리고자 할 것이고, 유술가는 가드포지션으로 끌어들이며 서브미션 역습을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노상에서의 격투라면 눈을 찌르거나, 물거나, 손에 잡히는 돌맹이로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일대다수의 거리 싸움에서는 한 사람의 상대와 오랜 시간 붙들고 싸우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불리해질 수 있지만, 일대일로 진행되는 격투기 경기에서라면 안심하고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며 포인트를 쌓아가거나 상대에게 데미지와 피로를 안겨주어 마지막에 결정타를 날릴 수도 있다.

지난번 K-1 WGP 결승에서 바다 하리의 돌발행동은 1이나 2의 관점에서는 레미가 대응했어야 할 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K-1은 3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므로 바다 하리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 레미가 대응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격투가로서의 자질이나 실전 능력을 의심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각 무술/격투기 종목들은 각자가 이해하고 추구하는 바를 나름대로 정리해 수련 체계를 만들었다. 이 역시 3가지 케이스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거기에 또한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도 하다.

<가> 1(호신)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추도록(혹은 잃지 않도록) 추구하면서, 그를 위한 수단으로서 2(전투)의 상황을 상정한 수련을 하거나 (형, 본이나 대타 등), 현대에 와서 경기성이 강화된 경우는 3(경기)에 맞춘 수련을 병행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른 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무도'임을 강조하는 종목이나 '고류'에 해당하는 종목일 수록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정말로 실전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는 종목이 비슷한 논리로 치장한 수련 체계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 2(전투)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에 주력하는 경우인데, 이른바 '실전'을 가장 많이 강조하는 대다수의 종목이 이에 해당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그에 필요한 기술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용적인 기술을 양산한다. 따라서 대개 상황 별로 술기를 나열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술기의 가지 수가 곧 실전성으로 연결된다는 착각으로 기술의 가지수만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다> 3(경기)에 집중하는 경우다. 기량을 겨룬다는 의미의 '경기'나 격식을 갖추고 싸우는 기예라는 '격투기' 등으로 불리며, 이는 곧 스포츠로서의 경쟁 수단이다. 제한된 조건 하에서 싸울 수 있고(즉 예외적인 케이스를 대비하지 않아도 되고), 정해진 승패의 조건을 채우면 된다. 목적이 분명하고 조건이 구체적인 만큼 그 목적과 조건에 특화된 디테일한 기술이나 단련법이 발달하고 다른 어떤 경우에 비해서도 '싸울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외 상황에 대한 시야나 경험이 그만큼 더 줄어들 수 있다.

70세 노인에게 손만 닿아도 사람이 날아가버리는 믿기 어려운 경지를 보여주는 합기유술, 그 실전성은?  

이와 같은 전제 조건 하에서 어떤 무술의 실전성을 의심하게 되는 이유는,
A. 목적 및 수련 체계 자체가 완성되지 못해 미숙한 경우
B. 수련체계의 전수 및 실천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경우
C. 수련의 목적이나 의미를 상실하거나 오해하는 경우
D. 다른 실전성의 잣대로 평가하는 경우
의 하나 혹은 복합적인 케이스라 할 것이다.

A의 경우는 신생무술이 반드시 겪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종합격투기 상황에서 그래플링보다 타격을 중심으로 싸우려는 종목이 있다고 가정하자. 목적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킥복싱 형태의 입식 타격 기술만으로 수련 체계를 구성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완성되지 못한 체계다. 따라서 그라운드 상황으로 가지 않기 위한 대비라든지, 그라운드 상황에서의 타격 등을 고려하면서 체계를 완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B나 C는 반대로 오랜 역사를 가진 종목에게서 곧잘 볼 수 있는 케이스다. 예컨대 많은 동양의 전통무술들이 현대에 들어서며 과거 해왔던 단련을 제외하고 기술이나 형 위주로만 수련을 함으로써 위력을 갖추지 못한다든지, 아예 전수자가 계승자의 맥이 끊기면서 일부 수련체계나 요결이 전해지지 않는 경우 등이 B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형을 수련하면서 각 동작의 의미를 모르거나 잘못 해석된 것을 전하는 경우나 단련에 해당하는 동작을 실전 기술로 받아들이는 경우 등은 C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D에 해당하는 경우는 해당 종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대부분의 실전성 논란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아이키도나 복싱에 발차기나 발차기에 대응하는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실전성이 낮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아이키도는 <가>에 해당하는 종목이므로 아이키도에서의 실전은 애초에 발차기를 당할 일을 안 만들게끔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상대가 발차기를 못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복싱은 <다>에 해당하므로 애초에 발차기는 고려 대상이 아니고, 발차기를 하면 오히려 지게 된다. 그런데 <나>의 기준에서 이 두 종목을 발차기가 없다는 이유로 실전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고류 무술이나 전투격투술 등에서 현대 격투기를 보고 "저것은 스포츠일 뿐 실전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실전의 관점이 있으므로 타당한 발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스포츠 격투가들과 어떤 상황에서든 싸움을 벌였을 때 우위에 있거나 제압할 수 있다고 단정하거나, 경기에서 패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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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지난 번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동양 삼국이 차이는 있지만 무술과 격투기를 상당히 분리해서 바라보는 반면, 서양에서 무술과 격투기의 개념 분리가 그다지 필요없었던 것은 애초에 서양의 무술은 '격투기'적인 관점에서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즉 이미 서양에서는 순수하게 서로의 격투 기량을 겨루어 발전시키는 '스포츠' 혹은 '경기'적인 '격투기'로서 무술을 발달시켜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현대 스포츠에서는 육상 종목인 투포환,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등이 사실 애초에는 모두 전쟁에서 쓰이는 병기술의 일부가 아니었겠습니까?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런 부분부분들을 오래 전부터 분리시키고 기록 경기로서 점차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달시켰습니다. 격투기적인 부분들 역시 레슬링, 복싱, 검술, 창술 등으로 분리시키고 각자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발전시켜왔는데, 거기에도 경기적 요소를 지대하게 형성했습니다.

중세 기사들이 곧잘 펼쳤던 기마창술 경기를 떠올려봅시다. 그 시대에 이미 그들은 매우 복잡하고 고도로 경기화된 룰을 가지고 기량을 겨뤘습니다. 그러면서 그 '게임'에 걸맞는 독자적인 스킬과 전술도 발전해왔습니다. (결코 실제 전투에서 그런 식으로 싸우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펜싱이나 레슬링 역시 지역적 스타일 등에 따라 그 안에서 또 종목이 나뉘기까지 했습니다.

즉, 서양에 있어서 martialart는 직접적인 전투 혹은 격투를 위한 기술만을 지칭하며 또한 그 기술들을 '게임' 혹은 '경기'로서 발전시켜왔다는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분명한 전투기술인 사격을 스키나 육상, 수영 등과 접목시켜 크로스컨트리 같은 새로운 경기 종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연원은 분명히 군사 훈련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지금 그 종목을 '마샬아트', 즉 병법이나 전투술, 무술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동양에서의 개념 형성 과정은 오히려 정반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거, 동양에서는 흔히 교육 과정의 구분을 '문무'로 양분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라는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무협지의 내용을 떠올려보십시오. 흔히 각 인물들은 각자 독특한 무공을 익히고 나오는데, 개중에 흔히 말하는 경신공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모두 지금의 체육 종목에 다름 아닙니다. 즉, 빨리 달린다든지, 높이 뛰어오른다든지, 헤엄을 잘 치거나, 잠수를 오래 한다든지 말이지요. 즉, 육상이나 수영, 체조 등이 모두 '무공'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흔히 말하는 소림역근경 같은 힘을 기르는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단련법이나 개합공, 참장 등의 신체 조절 능력을 기르는 훈련도 모두 '무공'이라는 단어로 압축됩니다. 활쏘기나 칼, 창과 같은 무기를 다루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밧줄이나 여러가지 도구 뿐만 아니라 화학약품 등을 사용하는 기술이나 능력도 무공입니다. 심지어 멀리 보는 능력이나 귀를 밝게 하는 훈련, 호흡법 등도 모두 무공에 속합니다. 

즉, '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신체를 사용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며 (그것은 결국 개개인의 전투 능력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공'이라는 것은 그것에 관련된 능력 혹은 그 능력을 배양하는 훈련법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술을 잘한다, 무공이 높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도 컨트롤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신체 능력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동양에서 말하는 '무(술)'이라는 것은 뜻 그대로의 '체육(體育:몸을 기름)' 그 자체였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사실상 격투기적인 관점으로는 비실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 마땅한 동양 전통무술의 복잡다단한 수련 체계나 연공법, 기술 형태가 오히려 이해가 됩니다. 결국 각 무술유파는 격투 혹은 전투라는 목적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각자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신체 능력의 구현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때로는 중국 내가권처럼 복합적인 인체 역학의 이해로 발현되기도 할 것이며 일본의 합기계 무도들처럼 어떤 특정 기술 체계의 궁극을 추구하는 형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또 이러한 것들이 동양의 형이상학적 사상과 맞물려서 인체라는 소우주를 통해 보편적 이치인 '理(일본식으로 표현하자면 '이합'이 되겠지요)' 또는 道를 추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면 실제로 격투나 전투와는 관계 없는 동작들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흔히 요사이 '무술의 본질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살상술이다'라는 의견이 많이들 나오고 있습니다만, 모든 것을 발생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현상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을 때 이런 관점으로 돌아볼만하기도 하지만, 무턱대고 애초에 이런 것이었으니 지금도 그래야한다는 것은 그 현상의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어떤 동작이 그 유파만의 어떤 이상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면 그것을 두고 '무술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양의 '무' 라는 개념이 이처럼 폭넓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격투기'라는 것을 구분하여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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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

외국인 격투기 관계자들과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다 쥐어짜며 영어로 이야기를 하거나 메일, 기사를 주고 받다 보면 무술과 격투기를 구분해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대충 뭉뚱그려서 얘기할 때야 그냥 martial arts 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흔히 우리는 무술과 격투기가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막상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무술과 격투기의 일반적인 개념 차이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사실 참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디씨인사이드에 처음 격투스포츠 갤러리가 생겼을 때도 '격투스포츠'라는 카테고리명 때문에 이런 논란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생각해보면 저는 대충 이 정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무술 또는 무예라고 할 경우는 일단 동양을 발원지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아닐 경우는 국가 또는 지역적 전통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며 (카포에라나 사바트 같은 경우 브라질 무술 또는 프랑스 무술이라고 하지, 브라질 격투기 또는 프랑스 격투기라고는 잘 표현하지 않지요. 그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독련 형태나 기공, 무기술 등 포괄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고 소위 형이상학적인 무도 정신, 때에 따라서는 신비주의에까지 치닫는 '도'에의 성취가 강조됩니다.
 
반면 격투기라고 하면 어느 정도 서양을 발원지로 하거나 외래 스포츠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고 상당히 현대적인 냄새를 풍기면서 거의 맨손 대련이나 겨루기 경기 중심의 종목을 칭하는 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역시 형이상학적인 목표보다는 보다 실천적인 성과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기는 합니다만, 격투기라고 하면 뭔가 무술에 비해 수준 낮은 싸움으로 보는 경향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권도, 유도, 택견 등의 겨루기 중심의 스포츠성 강한 종목도 굳이 전통성을 강조하며 무술로서 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동양 삼국의 개념도 상당히 다르지요. 일본에서는 '무도'가 아닌 '무술'이라고 하면 고류 쪽을 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류의 경우는 주로 독련이나 약속대련과 같은 형 중심의 수련 방식이 주가 됩니다. 

무도라는 표현을 우리가 칭하는 무술 또는 무예의 개념이라고 본다 해도 격투기와의 구분은 얼핏 우리와 비슷한듯 하면서 또 다릅니다. 실제로 경우에 따라서는 검도 같은 종목도 격투기로 칭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겨루기 경기가 중심이 되는 종목을 격투기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라테 등도 특히 풀컨택트 유파인 경우는 무도라기보다 격투기로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고, 앞서 예를 들었던 카포에라나 태권도도 일본에서는 격투기로 보지 무도로는 보지 않습니다. (유도의 경우, 경기 유도와 그렇지 않은 유도를 구분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기 유도 단과 코도칸(강도관) 유도 단을 굳이 구분하는 경우를 종종 봤거든요.) 즉, 전통성을 중심으로 하는 구분보다는 실제 수련 방식이나 경기 방식에 기준을 두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격투기라고 해서 수준을 낮춰 보는 시선은 상당히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오히려 고류나 무도 쪽이 격투기보다도 더 실전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보는 흔히 격투기가 더 실전적이라고 하는 우리와는 좀 차이를 보이는 관점이 꽤 일반적입니다. 그것 역시 격투기가 '경기' 중심, 즉 죽음을 걸고 싸우는 '시아이(사합/시합)'이 아닌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 룰 안에서 싸우는 모의 전투/스포츠라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겠지요.


중국은 아예 격투기라는 표현을 찾아보기가 무척 어려운데, 대신 박격이나 산수, 산타라는 표현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듯 합니다. 중국에서의 격투기에 대한 인식 역시 그야말로 '현대적인 맨손 겨루기 중심의 경기 스포츠'라는 것을 보여준달까요. 어떤 면에서는 가장 구분이 명확한 동네가 중국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결국 모두 '우슈(무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포함된 하부 개념, 즉 전통권, 규정 경기투로, 경기 산타, 경찰/군용 산수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라서 어찌 보면 또 가장 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중국인 듯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시 서양으로 돌아가 보자면, 서양의 무술은 애초에 겨루기 중심이되 규칙이 있는, 즉 스포츠성이 강한 쪽으로 발달이 되어왔습니다. 복싱, 레슬링, 펜싱, 사바트, 심지어 기마창술까지...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가장 신종 격투기라고 할 수 있는 MMA라는 단어 자체도 mixed martial art 이듯이 결국 서양에서는 굳이 무술과 격투기의 구분이 필요없는 것도 당연하겠다 싶습니다. (복싱과 같은 classic한 종목 측 인사들이 MMA를 비하하는 의미로 무규칙 - No Hold Barred의 싸움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만 )  

대신 굳이 필요하다면 동양에서 유입된 무술들을 (oriental 혹은 Korean/Japanese/Chinese) traditional martialart 라고 표현해서 복싱, 레슬링, 펜싱 등의 서양 무술과 구분하는 정도인 것이겠지요. 또, 간혹 fight sports나 ring sports라는 영어 표현도 있습니다만, 이것 역시 동양적인 관점에서 자기 수련 중심인 무술과 경기 중심의 격투기를 구분하고자 만들어낸 표현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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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