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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되던 시절의 일본에서는 전쟁을 시작할 때 효시를 쏘아 공격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전쟁에서의 예의 같은 것이 있었다 한다. 효시는 우는살이라고도 불리는 화살인데 화살을 날리면 화살촉 부근의 장치에 의해서 귀신 우는 소리가 나는 화살이다. 이 효시의 단어가 바탕이 되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릴 때 보통 효시라는 표현을 쓴다.

이제는 8년째에 접어들어 봄이면 절로 발길이 가곤 하는 그곳, 인사동 문화마당 조선극장 터에는 드디어 택견배틀 2011을 알리는 효시가 울려 퍼졌다.

오늘의 경기는 대전 전수관과 고려대학교, 장산곶매와 아리쇠의 경기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과연 오늘 경기는 어떨까 하는 궁금함을 가득 담고 택견배틀 장에 앉았다. 이미 지난주에 열렸어야 할 경기지만 엄청난 비가 오는 바람에 연기되었고 오늘도 아침 무렵까지만 해도 비가 와서 걱정했으나 오후가 되며 거짓말처럼 날이 개고 햇님이 방긋 웃는 모습을 보였고 바람까지 선선한 것이 최고의 날씨라 할 만했다.

올해 아나걸 송지유 양의 똑 부러지는 소개와 함께 대전 전수관과 고려대학교 팀이 입장했다. 두 팀 다 작년 택견배틀에서 경북 성주 전수관에게 쓴 잔을 마셨던 기억이 있는 팀이다. 대전 전수관은 성주에게 져서 탈락했고 고려대학교는 3,4위전에서 성주 전수관의 황인동에게 판쓸이를 당하며 마지막 경기에서 그만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대전전수관의 첫 선수는 길게 기른 파마머리가 인상적인 오효섭 선수였다. 대전 전수관의 선수들은 기본기가 탄탄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데 마치 그런 교과서를 보여주듯 상대로 나온 성준혁 선수를 맞아 전형적인 아랫발질의 견제를 하다 기습적으로 올라간 곁차기로 다음 선수를 불러들였다. 뒤이어 등장한 송조현 선수는 특별히 아크로바틱한 본때뵈기를 하지는 않았고 얌전히 경기장 중앙에 가서 섰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는 훌륭한 잠언을 남겨주셨고 얌전한 고양이 송조현 선수는 대접이 끝나고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곁차기를 올렸으며 얌전한 송조현 선수의 겉모습에 속아 넘어간 오효섭 선수는 택견배틀 2011 퍼스트 위너(First Winner)의 위명이 한순간에 곤두박질치며 3초만에 패배해버리고 말았다.

뒤이어 등장한 함지웅 선수는 덩치와 힘을 바탕으로 송조현 선수를 거세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았지만 후려차기를 잘 쓰는 함지웅 선수는 순간 빈틈을 노려 송조현 선수의 왼편 얼굴을 오른발 후려차기로 정확하게 가격했다. 그러나 얼굴이 아닌 후두부를 가격했기에 재경기.

송조현 선수는 여전히 뭔가 알 수 없는 듯한 움직임으로 함지웅 선수를 공략했고 함지웅 선수의 아랫발질에 악! 소리를 내며 반격하기도, 물구나무 쌍발차기, 일명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공격을 하기도 했다. 뭔가 하나가 빠진 듯한 그런 모습에 점점 말려들어갔고 결국 시간이 다 지나 경고 수가 많은 함지웅 선수가 경고 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것이 허허실실 전법인가......

대전 전수관에서 오태호 선수를 내보냈다. 오태호 선수는 대전 전수관 팀에서 유일하게 머리를 물들였던 선수고 세간의 인식처럼 뭔가 반항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아주 거세게 송조현 선수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지쳐버린 송조현 선수는 결국 오태호 선수에게 잡혀 넘어가버리고 말았지만 너무 밀어붙이는 것에 연연한 오태호 선수도 이미 경고를 두 개나 받아버리고 말았고 뒤이어 등장한 고려대학교의 임한국 선수에게 또 하나의 반칙을 범하며 경고를 받아 결국 경고 패를 당하고 말았다.

임한국 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나온 대전 전수관의 선수는 윤창균 선수. 그는 압도적인 위력의 엎어차기로 임한국 선수를 걷어찼고 펑펑 울려 퍼지는 소리는 관객들이 다 아프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다리를 세게 걷어차면 장사 없어!!’

라고 하시던 송덕기 옹의 말씀처럼 결국 버티다 못한 임한국 선수는 윗발질을 올렸으나 그 와중에 그 발이 잡혀 윤창균 선수의 외발쌍걸이에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보는 사람이 다 호쾌한 외발쌍걸이였다.

뒤이어 나온 한경덕 선수에게도 윤창균 선수는 똑같은 방식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정말 기본기를 제대로 다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기본기에 힘과 체중까지 바탕이 되니 이건 정말 답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번 다리를 잡히기도 했지만 체중이 있다 보니 그걸 그대로 잡아 넘기기가 수월치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승기를 잡은 윤창균 선수는 되치기로 한경덕 선수를 들여보냈다.

뒤이어 강태경 선수가 나왔다. 역시 우직하게 같은 방식으로 밀어붙이던 윤창균 선수를 맞아 강태경 선수는 이전의 선수들과는 달리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갔고 오랜 인고 끝에 결국 특기인 후려차기로 윤창균 선수를 들여보내고 장창수 선수를 불러냈다.

대전의 에이스인 장창수 선수와 강태경 선수의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둘 다 마지막 선수라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의외로 승기가 보이면 파고드는 발길질과 태기질은 맞는다는 두려움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는 택견꾼들의 자존심과도 같았다. 둘 다 경고를 받을 정도로 침착하면서도 거세게 진행된 경기는 결국 한순간의 차이를 승리로 끌어낸 장찬용 선수의 태기질로 결판이 났다.

효시를 시원하게 쏘아올린 두 팀의 승자는 치열한 접전 끝에 대전 전수관이 되었다. 효시는 활터에서 쏘면 귀신울음이 난다고 해서 궁사들이 쏘기를 꺼려하는 화살이다. 택견배틀이 아무리 즐겁다고 하나 결국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 법이고 그 결과는 끝나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마 속으로는 누구도 효시를 울리기 싫어할지도 모른다. 패배라는 기록은 당연히 본인들에게 좋은 기억이 아니다. 승리의 눈물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면 패배의 눈물은 가슴 아픈 아릿함을 주는 법이고 효시를 쏘면 결국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마련이지만 대전 전수관과 고려대학교는 용감하게 효시를 쏘았고 그 효시의 귀신울음을 이겨낸 팀은 대전 전수관이 되었다.

하지만 그 승리는 고려대학교라는 훌륭한 파트너가 없었다면 애초에 탄생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화 ‘바람의 검심’에서 유신지사들에게 패배하고 사라졌던 신선조의 3번대 조장인 사이토 하지메는 이렇게 말한다.

“승자인 너희 유신지사 뿐만 아니라 우리 신선조도 패자로서 역사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했어.”

인기 판타지 소설이었던 퇴마록의 엔딩을 보면 세상을 파괴할 징벌자와 세상을 구할 구원자가 쌍둥이로 태어나 서로를 끌어안으며 파괴의 에너지도, 구원의 에너지도 모두 중화되며 사라져 마침내 그 자리에는 그저 환하게 웃는 행복한 갓난아이들만이 남았던 것처럼 오늘의 경기에서 승자가 된 대전 전수관도, 패자가 된 고려대학교 팀도 그런 관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졌다고 해서 얼굴을 붉히거나 슬퍼하거나 분하다고 땅을 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서로에게 덕담을 나눌 수 있는 매력적인 격투기 택견배틀. 어쩌면 사람들이 택견배틀을 좋아하고 구경하는 이유는 승자와 패자로 명확하게 갈려 항상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화합과 행복은 승자와 패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슬기를 간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by 곰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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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g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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