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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택견에 대해 알고 있는 모습은 송덕기옹의 택견 모습 하나 뿐이다.

구전으로도 송덕기옹은 명절이 되면 결련택견판이 크게 벌어질 정도였고 적어도 서울지역에서는 굉장히 성행했다는 것이 맞는 말 같은데 문제는 그런 택견이 왜 택견꾼들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송덕기옹의 모습 하나만 남아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예전부터 '택견의 동네화' 라는 생각으로 각 동네마다 택견의 모습이 많이 틀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 그런 생각을 했던 때는 제 1회 전국 택견대회가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신한승 선생이 활개짓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활개짓을 잘 해야 된다고 하자 송덕기옹이 역정을 내면서

"난 머리 위로 손 번쩍 번쩍 드는 활개짓은 보지도 못했어! 택견은 품밟기가 다야!"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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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승 선생이 그런 활개짓을 배운 것은 구리개 택견의 명인이라는 김홍식 옹에게서였다고 한다. 택견에 품밟기가 전부였다면 김홍식옹도 분명 송덕기옹과 같은 식의 증언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을 받았다면 신한승 선생은 품밟기에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인데 신한승 선생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 김홍식옹의 택견에 대한 가르침은 송덕기옹과 뭔가 달랐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신한승 선생이 굳이 송덕기옹에게서 진득하니 배우지 않고 전국으로 택견명인이라는 분들을 수소문해 다녔다는 것은 어렸을 때 자신이 보았던 택견과 송덕기옹의 택견이 뭔가 좀 차이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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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소설 '단' 의 저자인 권태훈 옹도 증언하기를 윗대와 아랫대의 택견 스타일이 틀렸으며 윗대는 순간적으로 다리를 걸어 넘기는 기술을 잘 썼고 아랫대는 화려하게 차는 발길질이 좋았다고 한다.(백두산족에게 고함인가 하는 책에서 무술편인 '체술' 이야기를 하며 택견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잠깐 나온다.) 권태훈 옹의 신비주의는 접어두고라도 택견에 대한 증언은 새겨들을만 하다. 적어도 송덕기 옹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19세기 노인이었으니까.

또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택견판이 싸움이 자주 났다는 말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규칙이 널럴하고 애매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각 동네마다 택견의 스타일이 틀렸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사직골의 택견은 지금 결련택견협회라고 하고 구리개의 택견은 충주식 택견, 왕십리의 택견은 대한택견쪽이라고 하자. 이들이 명절날 모여서 결련택견을 벌이는데 문제는 각 동네마다 규칙이 틀리다는 것이다. 왕십리 택견은 모두 밀어차는 방식인데 사직골 택견은 다리와 얼굴은 세게 까도 되고 구리개는 한술 더 떠서 몸통까지 세게 차버리는 식이면 이런 패들이 모여서 결련택견 벌이면 당연히 싸움이 날 것이다.

사전에 모여서 각 패들의 우두머리들이 규칙을 합의한다 해도 평소 익힌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그래서 송덕기옹도 택견판에서 종종 싸움이 벌어졌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본래 택견이라는 말이 무술의 대명사를 지칭하는 말로 시작이 된 것부터 해서 구한말에 동네에서 싸움 좀 하면 '택견 하는구먼' 이라는 소리도 나왔다는 말(이 말은 출처가 현재 약간 불분명하다.)등으로 볼 때 각 동네마다 택견의 스타일이 달랐고 택견이라는 말은 어쩌면 요즘의 UFC같은 종합 격투에 준하는 의미의 단어였을런지도 모른다.

올빼미님은 이것을 말하길 '송덕기옹 스타일의 택견이 팀 [임호] 스타일의 택견이었고 송덕기 옹은 팀 [임호] 의 택견꾼들 중 하나일 것.' 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었다.

생각해보면 그럴듯 하다.


어쩌면 그런 구한말의 택견의 동네화가 지금 현대에 다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송덕기 옹, 김홍식 옹, 신한승 선생이 어렸을 때 봤던 택견꾼들의 움직임에서 굳이 품밟기를 지목하지 않은 점 등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택견은 '얼굴을 한대 차거나 넘어뜨리면 승부가 나는'식의 격투를 지칭하는 것이며 딱히 품밟기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체계를 이루지는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단, 송덕기 옹 쪽의 택견을 제외하고는.

결국 구한말에 그렇게 많았다던 택견꾼들이 거의 사라진 것은 품밟기라는 확고한 기본기의 체계를 간직하던 송덕기옹 쪽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런 확고한 기본기가 없기에 택견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망각한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중국무술이든 가라데든 품밟기를 제외한 기술들은 대부분 존재하니까.)


이 글은 좀 위험할 수 있다. 가뜩이나 전통에 대한 개념에 거짓부렁을 밥먹듯이 행하는 이 나라 무술계에 있어서 이 글처럼 생각한다면

"나도 할아버지한테 요런요런 기술 배웠었는데 알고보니 이건 택견이었어!! 우리 동네 택견 스타일
은 송덕기 류(流)와는 달라서 품밟기가 없는거거든!!"

할 확률이 높다. 그것도 아주 매우-_-

다만 지금은 이미 정보공개가 거의 다 이루어진 상황이니 저런 소리 했다가는 공개바보 취급을 받겠지만......택견에 대한 생각으로 저런 생각은 해볼만 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협회들을 통괄해 아우르는 국가의 단체가 있고 그런 차원에서 중도적으로 연구를 이루어 나간다면 이런 이론들도 나오고 서로 토론도 해보고 각 증언들을 모아서 좀 구체적인 연구가 가능할텐데 현실은 그러지를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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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飛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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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의 대표적인 풍속도인 혜산 유숙의 [대쾌도]
*출처는 인터넷 검색


택견은 무형문화재 76호로 무예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택견이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택견은 전국에 퍼져있는 무예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일단 택견의 기원에 관한 것을 아셔야 할텐데 택견의 기원은 무예가 분명합니다. 재물보의 기희편에 보면 나오는 말이 무술, 수박이 곧 오늘날의 탁견이다. 라고 하였고 송덕기 할아버지도 탁견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때 무술로서의 탁견이 전해지면서 그 수련방법과 대련 방법을 놀이로 즐기게 된 것이 경기화된 택견이며 그 경기 택견을 마을과 마을간의 단체전으로 하는 것이 [결련택견] 입니다.

그러면서 탁견은 무술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대명사에서 점점 특정한 기예를 나타내는 고유명사로서 자리잡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탁견은 품밟기의 움직임으로 보건대, 그리고 수박과의 연관을 생각할 때 상당히 많은 전투적 기법을 포함한 무예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군영쪽에서는 꽤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증언에도 별기군들이 택견을 했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럼 그런 군영의 사람들이 지방으로 가면서 택견의 기법이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입니다.

또는 서울에 살던 택견꾼이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기법이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단 [까기] [잽이수] 등등의 놀이가 지방에서 발견되지요. 까기는 잡기가 아니라 순수하게 발로 상대의 다리를 차서 넘어뜨리는 놀이이며 잽이수는 서로 떨어져서 하는 씨름 같은 놀이입니다. 이외에도 평안도에 날파름이라고도 하는 기법도 발견되지요.

이렇듯이 지방에도 택견과 비슷한 기법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러나 경기로서 즐기던 결련택견은 서울에서밖에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무술도 택견의 기법이고 택견은 무술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니 자신도 택견을 한 사람이다 라는 주장을 하곤 하는데요...

[탁견] 이 경기화되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택견이 된 것이고 그 큰 줄기는 분명히 서울지방에서 행하던 택견과 결련택견이었으며 해동죽지, 코리언게임스 등의 여러 문헌들에 나오는 [택견]이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니 우리에게 인식된 택견이라는 기예는 결국 지방에는 없는, 서울에서만 발견된 그런 고유명사로서의 기예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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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飛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