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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0 가장 실전성 높은 무술은 무엇일까 (29)
그동안 좀 바빠서 다른 팀원들이 열심히 포스팅을 하는 동안 별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한 번 낚시를 좀 해볼까 합니다. ^^;

글 제목은 사실 무술이나 격투기를 주제로 한 얘기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그리고 영원한 논쟁거리가 될 이슈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 혹은 무술/격투기 종목들이 자신의 실전최강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종목이 실전성에 대해 의심과 평가를 하는 의견들도 많이 오가곤 하지요.


그런데 무술의 실전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실전' 그리고 '실전성'이라는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실전이란 말을 사용할 때 그 상황이나 개념이 의외로 다양하고, 사실상 실전성 논란이 벌어지는 대부분의 이유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실전에 대한 개념 차이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배울 때는 동작을 정확하고 크게 하지만 실전에서는 간략하고 상황에 맞게 변형해서 쓴다." 라고 말할 때의 실전과, "경기에서는 정면서기가 유용할 수 있지만 실전에서는 낭심을 공격당할 위험이 있다." 라고 말할 때의 실전, 그리고 "실전 최강은 언제든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미국 부시 대통령(-_-)이다." 라고 말할 때의 실전이란 개념은 분명히 크고 작은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무술에 있어서의 실전(성)'이라는 개념부터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흔히 실전성 논란의 여부에 많이 휘몰리곤 하는 한 종목을 실례로 해서 실전성 높은 무술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글 진행 편의 상 높임말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I. 실전이란


무술에 있어서 실전이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구분할 수 있다.

1 - 호신의 관점에서 본 실전
이다. 즉,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나 전투 상황을 모두 실전으로 가정하는 관점이다. 따라서 돌발적으로 상황이 닥칠 수도 있고, 때문에 나는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은 내가 다시 안전해짐으로써 종료되지만, 언제든 제2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쉬운 예로 노상에서의 시비나 기습을 꼽을 수 있으며, 함정은 물론 소매치기, 교통사고, 갑자기 날아온 공에 맞는다거나 미처 발 밑을 보지 못하고 뭔가를 밟는 등의 돌발 상황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2 - 전투로서의 실전
이다. 이것은 실제 전투처럼 싸울 준비가 된 상태(최소한 머리로는 싸운다는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규칙은 없다. 관습 등에 의해 암묵적으로 합의된 룰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가장 쉬운 예로 전쟁, 그리고 무사나 깡패 사이의 결투에서부터 친구끼리 주먹다짐을 벌이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대개 어느 한 편 혹은 쌍방이 전투 의사가 없어질 때까지 싸우게 된다.

3 - 경기로서의 실전
이다. 정해진 규칙과 준비된 상황에서 싸우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격투기'가 사실은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과)격하게 싸운다'라는 '격투(激鬪)'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격투기'의 '격투(格鬪)'는 격식을 갖추고 싸운다, 즉 규칙을 가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승부에 준하는 상황이 오면 실제 상황의 우열과 관계 없이 이길 수 있고, 규칙을 깰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처럼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제3자 또는 제도적/물리적 장치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자에서 후자로 올 수록 의미나 상정하는 범위가 좁아지고 의외성은 줄어든다. MMA는 3이지만 2에 가깝도록 기술적인 의외성의 폭을 최대한으로 넓힌 형태에 해당한다. 그러나 장소, 시간, 규칙, 상대 등이 모두 특정되어있기 때문에 3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대로 격투기 선수끼리의 비공식적인 결투가 벌어졌다면 선수로서의 자존심이나 심리적인 터부 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3의 양상을 띨 수 있지만, 어느 순간이든 그것이 깨질 수 있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2에 해당한다.


유명한 찰스 베넷과 크리스티아노 마르셀로의 백스테이지 격투 장면.
상황 자체는 2지만 당사자들은 무의식 중에 3의 마인드로 싸웠다고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개별적인 경험이나 환경, 이미지 등에 따라 실전의 양상은 더욱 다양하게 달라진다. 예컨대 같은 전쟁 중 백병전 상황이라고 해도 과거의 갑옷과 창칼로 싸우던 시절과 현재의 전투복장과 총검으로 싸우는 상황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각 상황이 유기적으로 연동하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밤거리에서 느닷없이 뻑치기의 습격을 받았다고 하자. 이것은 명백한 1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다행히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지갑만 뺏긴 상태로 뻑치기를 쫓아가다 막다른 골목에서 대치하여 실갱이 끝에 격투를 벌이게 됐다면 상황은 2로 바뀐다. 그런데, (정말 만화 같은 설정이지만 ;;) 그 때 뻑치기 조직의 보스가 나타나서 자기가 운영하는 지하격투클럽에서 깨끗이 주먹으로만 승부를 내라고 한다면 상황은 3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II. 실전성이란

이처럼 실전이라는 개념을 정리해봤을 때, 어떤 무술의 실전성이라는 것은
1) 실전 상황을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가
2) 그에 대비해 기술적/전략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려 하는가

3) 이상의 실전 상황과 대응책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인가

를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호신이라는 관점에서는 사실 실전이 상정할 수 있는 범위가 지나칠 정도로 넓다. 때문에 하나하나의 기술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마음가짐이나 평소 생활 자체에서 위험요소를 배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늘 경계하며 평소 심신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준비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전투나 경기의 관점에서 실전에 임할 때는 나올 수 있는 상황과 기술에 대한 인지 및 숙달, 이길 수 있는 구체적인 전술 등이 중요해진다.

예컨대 복싱 경기에서 아웃파이팅으로 포인트를 쌓아 이긴 나에게 상대가 너무 약이 오른 나머지 갑자기 링 아래에서 발차기나 태클을 해올 수도 있고, 그것이 난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3(경기)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1(호신)이나 2(전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정 가능한 상황이고 대비를 해야한다.

또, 같은 MMA에서라도 타격가는 태클에 대해 주먹이나 무릎으로 카운터 공격을 노리고자 할 것이고, 유술가는 가드포지션으로 끌어들이며 서브미션 역습을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노상에서의 격투라면 눈을 찌르거나, 물거나, 손에 잡히는 돌맹이로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일대다수의 거리 싸움에서는 한 사람의 상대와 오랜 시간 붙들고 싸우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불리해질 수 있지만, 일대일로 진행되는 격투기 경기에서라면 안심하고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며 포인트를 쌓아가거나 상대에게 데미지와 피로를 안겨주어 마지막에 결정타를 날릴 수도 있다.

지난번 K-1 WGP 결승에서 바다 하리의 돌발행동은 1이나 2의 관점에서는 레미가 대응했어야 할 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K-1은 3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므로 바다 하리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 레미가 대응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격투가로서의 자질이나 실전 능력을 의심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각 무술/격투기 종목들은 각자가 이해하고 추구하는 바를 나름대로 정리해 수련 체계를 만들었다. 이 역시 3가지 케이스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거기에 또한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도 하다.

<가> 1(호신)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추도록(혹은 잃지 않도록) 추구하면서, 그를 위한 수단으로서 2(전투)의 상황을 상정한 수련을 하거나 (형, 본이나 대타 등), 현대에 와서 경기성이 강화된 경우는 3(경기)에 맞춘 수련을 병행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른 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무도'임을 강조하는 종목이나 '고류'에 해당하는 종목일 수록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정말로 실전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는 종목이 비슷한 논리로 치장한 수련 체계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 2(전투)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에 주력하는 경우인데, 이른바 '실전'을 가장 많이 강조하는 대다수의 종목이 이에 해당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그에 필요한 기술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용적인 기술을 양산한다. 따라서 대개 상황 별로 술기를 나열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술기의 가지 수가 곧 실전성으로 연결된다는 착각으로 기술의 가지수만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다> 3(경기)에 집중하는 경우다. 기량을 겨룬다는 의미의 '경기'나 격식을 갖추고 싸우는 기예라는 '격투기' 등으로 불리며, 이는 곧 스포츠로서의 경쟁 수단이다. 제한된 조건 하에서 싸울 수 있고(즉 예외적인 케이스를 대비하지 않아도 되고), 정해진 승패의 조건을 채우면 된다. 목적이 분명하고 조건이 구체적인 만큼 그 목적과 조건에 특화된 디테일한 기술이나 단련법이 발달하고 다른 어떤 경우에 비해서도 '싸울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외 상황에 대한 시야나 경험이 그만큼 더 줄어들 수 있다.

70세 노인에게 손만 닿아도 사람이 날아가버리는 믿기 어려운 경지를 보여주는 합기유술, 그 실전성은?  

이와 같은 전제 조건 하에서 어떤 무술의 실전성을 의심하게 되는 이유는,
A. 목적 및 수련 체계 자체가 완성되지 못해 미숙한 경우
B. 수련체계의 전수 및 실천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경우
C. 수련의 목적이나 의미를 상실하거나 오해하는 경우
D. 다른 실전성의 잣대로 평가하는 경우
의 하나 혹은 복합적인 케이스라 할 것이다.

A의 경우는 신생무술이 반드시 겪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종합격투기 상황에서 그래플링보다 타격을 중심으로 싸우려는 종목이 있다고 가정하자. 목적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킥복싱 형태의 입식 타격 기술만으로 수련 체계를 구성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완성되지 못한 체계다. 따라서 그라운드 상황으로 가지 않기 위한 대비라든지, 그라운드 상황에서의 타격 등을 고려하면서 체계를 완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B나 C는 반대로 오랜 역사를 가진 종목에게서 곧잘 볼 수 있는 케이스다. 예컨대 많은 동양의 전통무술들이 현대에 들어서며 과거 해왔던 단련을 제외하고 기술이나 형 위주로만 수련을 함으로써 위력을 갖추지 못한다든지, 아예 전수자가 계승자의 맥이 끊기면서 일부 수련체계나 요결이 전해지지 않는 경우 등이 B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형을 수련하면서 각 동작의 의미를 모르거나 잘못 해석된 것을 전하는 경우나 단련에 해당하는 동작을 실전 기술로 받아들이는 경우 등은 C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D에 해당하는 경우는 해당 종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대부분의 실전성 논란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아이키도나 복싱에 발차기나 발차기에 대응하는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실전성이 낮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아이키도는 <가>에 해당하는 종목이므로 아이키도에서의 실전은 애초에 발차기를 당할 일을 안 만들게끔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상대가 발차기를 못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복싱은 <다>에 해당하므로 애초에 발차기는 고려 대상이 아니고, 발차기를 하면 오히려 지게 된다. 그런데 <나>의 기준에서 이 두 종목을 발차기가 없다는 이유로 실전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고류 무술이나 전투격투술 등에서 현대 격투기를 보고 "저것은 스포츠일 뿐 실전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실전의 관점이 있으므로 타당한 발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스포츠 격투가들과 어떤 상황에서든 싸움을 벌였을 때 우위에 있거나 제압할 수 있다고 단정하거나, 경기에서 패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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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