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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명동에 볼 일을 보러 나갔다가 날이 너무 좋아서 종로며 광화문을 좀 걸었습니다. 인사동, 삼청동, 청계천, 덕수궁 정동길까지 대학 시절에는 곧잘 다니곤 했던 마실 코스를 오랜만에 따라 다니면서 을지로입구 북스리브로부터 종로2가 반디앤루니스, 종각 영풍문고, 광화문 교보문고를 들려 책도 보고 다리도 쉬어주곤 했지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서점에서는 당연히 무술서적 코너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무술서적 코너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받은 느낌은 신간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는 것인데, 그 대부분이 태권도 관련 서적이었고 그 내용은 수련생보다는 주로 지도자나 연구자를 위한 것이 많더군요. 도장 경영이나 비만아동/체력강화/경기 지도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책들이 많이 나왔고, 그 밖에 대학 등에서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낸 것도 많았습니다. 반면 태권도 이외의 종목에서의 신간은 수련생을 위한 실용적인 내용의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대조적이더군요. 개중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책을 몇 권 꼽아봤습니다. 


1. <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
- 허인욱 지음, 한국학술정보(주) 펴냄


사실 이 책은 올해 나온 책은 아니고 작년 가을에 나온 것이고 저도 12월에 이미 봤던 책입니다만, 책 소개 글을 쓰는 김에 겸사겸사 같이 소개할까 합니다. ^^;

대한태권도협회 및 WTF로의 통합을 거친 이후 잘 알려지지 못했던 초기 태권도 유파들의 특색이나 수련 내용 등을 담고 있어 보다 구체적인 태권도 역사에 관심을 두셨던 분이라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가라테 이외에도 어떤 무술들이 현대 태권도 기술 체계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개인적으로 '무술의 역사는 사람 이름과 연도로 채워진 계보의 역사가 아니라 기술의 변천사로 접근해야 한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 반가운 내용이었습니다.

후반에는 부록 형식으로 YMCA 권법부 출신으로 최초의 태권도 교본을 쓰기도 했던 박철희 사범이 쓴 <사운당의 태권도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사범께서 말씀하시는 태권도에 대한 가르침은 후학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철희 사범은 택견과도 관련이 깊은 분으로 최근 택견 3단체의 수장들을 모아서 택견 통합을 논의하게끔 중재자 역할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2. <누구나 무술의 달인이 되는 간단한 방법>
- 강준 지음, 오성출판사 펴냄

공권유술이나 강준 관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만, 저는 공권유술이라는 무술이나 강준 관장이라는 인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강준 관장은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현대인들이 무술에 원하는 여러가지 요구사항(솔직, 간결, 다양, 효율, 세련, 안전 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권유술이라는 무술을 창안했고 잘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이런 현대무술이 존재한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특히 강준 관장은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96년에 공권유술을 만들고 2001년 첫 책인 <싸움에서 무조건 이기는 방법>을 펴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총 9권의 책과 8편의 교육용 영상(DVD, 비디오)을 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단일종목에 1명의 저자가 이만한 저술 활동을 해낸 사례가 없습니다. (단지 책 만이라면 한풀의 김정윤 선생이 약 12권의 한풀 교재와 '태견' 책 3종을 펴내기는 했습니다만) 

그 제목의 선정성이나 내용의 수준을 놓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한 명의 무술인으로서 그리고 신생무술의 개발자이자 지도자로서 당당히 자기 연구의 현재를 알리고 세상과 공유하며 피드백을 받아서 발전시켜나가는 활동은 분명 칭찬받을 일이지 비난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은 실제로 공권유술에 입문했을 때 어떤 식으로 수련이 이루어지며 어떤 점에 주의해서 수련에 임해야 올바른 발전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도장이나 단체 사진 등의 내용이 적지 않아 사서 보기에는 조금 아까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혹시나 주변의 평판 등으로 인해 공권유술에 대해 오해하고 계시거나 입문을 망설이는 분께는 이 책이 공권유술의 수련 내용이나 시스템, 마음가짐 등에 대해 오해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듯 하니 한번 쯤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3. <최강의 나를 만드는 실전격투기>
- 최광범/광수/광화 형제 지음, 삼호미디어 펴냄


사실 武Zine 블로깅을 하다 보면 계속 옆에 이 책 광고가 떠서 그러지 않아도 눈에 밟히던 차였죠. 극진가라테 창시자인 최영의 선생의 아들 3형제가 집필했고, 스피릿MC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재선, 유우성, 위승배, 권아솔, 이은수 등)이 참여해서 발간한 격투기 교본(?)입니다.

국내에 종합격투기 붐이 일어난 지도 5년이 넘어서고 있는데 관련 서적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도 안 됩니다. 특히 기술에 대해 전문적으로 다룬 책은 위에 언급한 강준 관장이 쓴 <실전대련테크닉>이 거의 유일무이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역 선수들이 직접 전해주는 종합격투기 기술서가 나왔다는 점은 참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기초체력단련을 위한 훈련법과 영양섭취, 간단하게 익힐 수 있는 단수 20개와 그 위력을 높일 수 있는 단련법, 선수들이 소개하는 중급기술, 그리고 최영의 총재의 일화를 소개하는 4가지 파트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내용은 상당히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올컬러에 깔끔한 편집과 사진 배치는 보기에도 쉽습니다. 특히 저자들이 의학을 전공한 덕에 각종 훈련법이나 기술에 대한 의학적 소견이 덧붙여져 있어 신빙성 있게 다가옵니다.

다만 전체적인 책의 구성을 놓고 봤을 때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집니다. 우선 본격적인 종합격투기 기술서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저자들은 호신을 위한 '싸움에 필요한 몇가지 기술을 쉽게 따라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책의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3부의 선수들이 등장하는 파트는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두의 스피릿MC 관계자 및 선수들의 추천사나 축하말도 좀 무색해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고요. 그런데 또 막상 저자들이 소개하는 단수 20가지에 대해서는 좀 더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고, 부친의 일화를 소개하는 글까지 섞여있다보니 전체적으로 두서가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요. 좀 더 집필 기간을 길게 잡고 내용을 충실히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 <택견겨루기론>
- 김영만 지음, 레인보우북스 펴냄


대한택견연맹 관악구 전수관 김영만 관장이 써낸 택견 경기 기술에 관한 책입니다. 3월 15일자로 책이 나왔으니 아주 따끈따끈한 신간이군요.

택견에 대해서는 그 동안 꽤 많은 관련 서적이 나왔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겨루기 경기와 기술에 대한 전문해설서가 나온 것은 처음입니다. 사실 상 우리나라 무술 서적 전체로 꼽아봐도 태권도, 유도 이외의 종목에서는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군요. (우리나라 무술격투기 저술 활동이 얼마나 비실용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만 요즘 보기 드문 흑백판이고 편집도 좀 밋밋한 편이라 기술서로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의 내용은 택견 경기의 특성, 실제 공방에서 사용되는 기술과 연결 체계, 기술 훈련법 및 단련법, 경기 준비 과정, 심리 요인 및 상담법, 웨이트 트레이닝, 응급처치, 규정 및 심판법에 이르기까지 선수와 지도자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3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중에서도 실제 기술이나 훈련에 관한 내용이 200 페이지 가까이 차지하고 있어 그 동안 경기 위주로 택견을 발전시켜온 대한택견연맹의 저력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비단 택견 뿐 아니라 합기도나 기타 무술 종목의 경기나 도장 교육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한 내용들이 아닐까 합니다.


5. <중국무도지 안휘권>

아마 중국무술에 정통하신 분들도 '안휘권'이라는 무술은 처음 보셨을 듯 합니다. 뭔가 신생 무술인가 싶기도 하고요. 저도 어제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좀 어리둥절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무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 이 책에서 말하는 '무도'란 춤출 '舞'에 밟을 '蹈', 즉 무용이나 춤을 뜻하는 말이었고요, (왜 우리나라에서도 댄스교습소 같은 곳에 곧잘 '무도장'이라는 간판이 붙어있곤 하지요? ^^) 안휘권은 '안휘성 권역'을 뜻하는 것으로 결국 이 책은 안휘성 지역에 전해지는 춤들을 조사하여 정리해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서점 직원들이 책 제목만 보고 어림짐작으로 책을 잘못 분류해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덕분에 잠시 웃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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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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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택견은 웬만큼 사람들에게 많이 널리 알려진 우리의 전통무예입니다. 대한택견연맹으로서 대한체육회에도 가맹했고 각 협회마다 독특하게 발전시켜 결련택견협회는 택견배틀로, 대한택견협회는 최고수전과 명인전 등으로, 충주쪽은 문화재 보존 쪽으로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매스컴도 많이 타게 되는데 꼭 시비거리가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택견이냐 태껸이냐는 것입니다. 예전에 고유석 기자님(택견배틀 전담 사진사, 블로거 기자)의 택견배틀 소개, 슬로우걸과 아나걸 소개에서도 그렇고 최근에 류운님의 아나걸 김해은양의 소식도 그렇고 언제나 이 논쟁은 빠지지 않습니다. 댓글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이 본문과 상관없는 댓글 싸움이라니 사회적 비용의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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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8년 택견배틀 우승팀인 강동 결련택견패의 결승전 승리 모습.
깃발을 든 선수는 김성복 선수



본래 택견의 최초의 어원은 재물보에 나온 [탁견]입니다. 한글로 기록된 이 탁견이라는 단어가 가장 최초의 기록인데요. 이 택견의 어원에 대해서는 잘 소개되어 있는 택견코리아의 '택견의 어원'을 소개하겠습니다.


[택견의 어원] by 택견코리아


근데 이상한 것이 한 가지 있군요. 이용복 선생님의 자신의 저서인 한국무예 택견(흔히 말하는 빨간 택견책) 에는 


“택견이 가장 먼저 수록된 것은 1920년 3월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어사전이고 이후 1933년 맞춤법통일안 제정 이후 태껸이라고 표기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중략) 송덕기는 탁견이라고 하고 고사에 밝은 노인들은 하나 같이 택견이지 태껸이나 탁견이 아니라고 하니...”


라고 나와 있는데 지금의 택견코리아 홈페이지는 그 점이 다르게 나와 있네요. 하여튼 문화재의 지정에는 결국 [택견] 이라는 이름이 올라가 있으며 사전에는 태껸으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결국 둘 다 맞는 것이니 큰 상관이 없겠군요.





...라고 했으나 이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바로 잡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도 적었다시피 택견기사가 나오면 반드시 꼭 튀어나오는 것이 [택견이냐 태껸이냐] 이고 이것으로 인해 기사의 본래 취지가 벗어나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게다가 택견은 이제 도약의 시점에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에도 정가맹을 했고 이제 시범 종목을 거쳐서 정식 경기가 열리게 되겠죠. 무예이니만큼 태권도, 유도, 검도처럼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이 붙는 국가공인단증도 나오게  될겁니다.

현재 가맹된 명칭은 [대한택견연맹] 인데 이것을 또 기사를 쓰는 분들이 워드작업으로 기사를 쓰다보면 [대한태껸연맹] 이라고 칠 수도 있고 이러면 없는 단체명이 생겨버립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별 게 맞습니다.

다른 단체의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가 흔히 아는 검도의 양대 산맥은 대한검도회와 해동검도협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검도 '협' 회가 있습니다. 대한검도회는 국가공인 단증이 나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호구 쓰고 죽도격검을 주로 하는 단체입니다. 대한검도 '협'회는 다른 검도 단체들이 서로 통합을 이루어 죽도 격검도 하고 진검술도 하는 단체인데 이 한 글자 틀린 협회명 때문에 수련생이나 수련지망생들은 많은 혼란을 겪습니다.

경찰시험 등으로 국가 공인단증이 필요한데 정작 수련했던 곳이 대한검도 ‘협’회 라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든가(경찰시험등에 가산점이 붙는 국가공인 단증은 ‘대한검도회’ 만이 유효합니다.) 친구인 대한검도회 사범이 검도하라고 권해서 집 근처 도장 가서 열심히 운동했는데 알고보니 대한검도 '협'회 라든가 하는 사태가 왕왕 있는데 만약 택견계에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분열이 되고 이에 그 단체가 체육회에 가맹된 [대한택견연맹] 대신 [대한태껸연맹] 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조직할 경우 대한검도회와 대한검도협회 같은 혼란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과거야 어쨌든 좋습니다. 태껸인데 여러 노인의 의견으로 택견으로 등록했건, 발음의 차이이건 맞춤법의 변형이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병행해서 써와도 별 문제가 없던 과거와 지금은 분명히 상황이 틀립니다. 택견은 도약의 시점에 있으며 이제는 이 용어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맞춤법에 따라 [태껸] 으로 하든지 아니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예외로 삼아 국어 사전에 특별히 따로 [택견] 으로 하든지 하는 방식으로 혼란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택견 협회들의 진지한 고민으로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덧: 현재는 무형문화재 지정명이 택견이고 굵직한 협회들이 모두 택견이라 하니 이 칼럼도 [택견Q&A] 로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능하면 사전, 맞춤법과 동일하게 [태껸] 으로 하는 작업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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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g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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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택견 Q&A 는 저도 잘 모르겠고 다같이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주제입니다.

일단 택견에 대한 풍속도나 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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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결련택견협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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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그 유명한 대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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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연세대 어학당에 있다는 그 풍속도인듯 합니다.(확인을 못해서..-_-;) 출처는 보시다시피 [무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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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교사가 찍은 사진.

이외에 기산의 풍속도는 사진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제가 알기론 그 풍속도는 택견이라기보다 씨름에 더 가깝다고 알고 있고요. 그것을 제외하면 모든 풍속도, 사진에는 성인은 없고 댕기머리의 아이들이 택견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알 수가 없더군요. 오죽하면 [일본인들이 성인들이 택견하는 풍속도는 이 잡듯이 찾아내서 없애버렸다.] 라는 생각까지 들까요... 대쾌도, 외국인 선교사의 사진 등을 보아도 언제나 택견으로 추정되는 기예를 하는 것은 아이들이나 소년들입니다. 동작이 같아서, 그리고 택견의 기본 자세인 인승자세와 같고 씨름과 함께 세시풍속으로 행해졌다는 택견이 언제나 거의 같이 나와서 택견이라고 추정되는데 왜 항상 아이들만 있을까요.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 택견이 아니라 택견과 비슷한 까기 등의 애들 놀이이다.


일단 이 아이들이 하던 것은 택견이라기보다 까기 등 발로 차서 넘어뜨리는 놀이 정도였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일단 아이들의 자세는 풍속도나 사진이나 모두 비슷한데 윗발질의 모습은 전혀 나오질 않고 기본 자세만 보이고 있죠. 씨름의 경우는 서로 샅바를 잡은 자세들 외에도 들어 올리는 자세 같은 것이 나오는데 비해 택견으로 추정되는 그림들은 자세가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2. 성인들의 택견은 매우 격해서 그림으로 그것을 묘사하기 어려웠다.


성인들의 택견이 아이들과 달라서 매우 격렬했기 때문에 폭력성이 짙어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풍속도란 미풍양속의 그림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게 격렬하게 두들겨 까는 것이 풍속도로 그리긴 좀 그렇지 않겠냐.


라는 의견이었습니다만 여성들 목욕하는 그림이나 석전(石戰)도 풍속도로 버젓이 있는 판에 그거 좀 격렬한 놀이라고 못 그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싶네요.


3. 성인들의 택견판은 밤에 했기 때문에 그림을 못 그렸다.


명절날 크게 하던 택견판은 멍석 깔아놓고 화톳불을 밝히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밤에는 그걸 그리기가 어려웠다.....라는 생각도 있지만 밤에 생각했다가 낮에 그릴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요-_-


4. 일본인들이 성인들이 택견 하는 그림이 멋있어서 다 훔쳐갔다.


제일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생각입니다. 남아있는 그림들은 뭘까요.



하지만 이것들 중 어느 것도 답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답은 커녕 실마리도 못 잡는 것 같아요. 분명히 명절날에는 성인들도 크게 택견판을 벌였다고 하는데 말이죠. 도대체 왜 성인들의 택견 모습은 그림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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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g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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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까페 [우리 무예 이야기: 작성자는 푸른하늘님]

지난 회에 이어서 이번에는 택견계의 논쟁거리인 밀어차기에 대해서 풀어보겠습니다. 서로 같은 거리의 개념을 가지고 있고 택견의 현대적인 발전을 경기로 바라보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택견협회와 결련택견협회가 늘 대립하는 이론이 품밟기 논쟁과 이 밀어차기 논쟁입니다.


밀어 찬다는 것은 는질러 차는 것으로서 상대에게 타격을 주지 않게 밀어버린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차긴 차되 타격을 최소화하고(또는 완전히 배제하고) 더불어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한다는 의미죠.


이 밀어차기에 대해서 대한택견협회는 택견의 모든 발질이 밀어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결련택견협회는 얼굴과 다리는 세게 차든 밀어차든 마음대로고 몸통만 밀어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단 몸통을 밀어차야 한다는 것은 두 단체가 동일하니 넘어가도 되겠죠.


결련택견협회의 도기현 회장님은 자신의 저서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에서 밝히듯이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배울 때 아랫 발질로 다리를 엄청나게 두들겨 맞으면서 배웠다고 합니다. 배우기를 그렇게 배우셨다고 하고 몸통은 밀어차야 하며 얼굴은 한 대만 차도 이기기 때문에 곧은 발질로만 차지 않으면 세게 차도 된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반면에 대한택견협회의 주장은 택견은 마을과 마을간의 경기였고 택견을 하다가 다치면 노동력의 상실이 일어나며 상호간의 감정이 상하기 때문에 타격을 배제하고 모든 발질을 는질러 차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ABO채널 동양 문화삼국지 무술편의 이용복 회장님 인터뷰 참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대한택견협회에서 주장하는 밀어차기란 것은 [민다] 는 것과는 의미가 좀 틀리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발로 차기는 차되 타격력을 거의 배제한다는 의미이며 결국 상대방의 몸통에 발질이 적중한다 해도 상대가 맞고 [타격을 입어서] 쓰러지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죠.


이 밀어찬다는 의미가 상대방에게 기준이 맞춰져 있는 것이라는 애매함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대한택견협회는 이 택견의 [밀어 찬다는 인식]을 오랜시간 수련생들에게 지도했고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무방하게 경기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밀어 찬다] 는 는질러차기의 인식이 [택견의 경기는 상대 감정 상할 정도로 세게 차지 않는다.] 라는 질서를 구성한 셈이죠. 원래 그랬느니 아니냐를 떠나서 이 질서 구성은 대단한 성과를 낳은 것입니다. 경기를 하다가 안 풀리면 짜증도 날 텐데 그런 것을 누르고 상대에게 하는 발질의 세기를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보통의 일은 아닙니다.


사실 대한택견협회의 경기를 해본 제 주변의 친구 지도자나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적당한 수준으로 차주는 것은 무방하다고 합니다. 회목치기(결련택견협회의 딴죽)의 경우 넘어뜨리기 위한 수이므로 좀 적당한 수준으로 세게 차도 무방하며 두름치기(후려차기)의 경우도 적당히 빠르게 탁~! 하는 느낌으로 차주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합니다. 반면 엎어차기(로우킥)의 경우는 차서 넘어뜨리는 것은 관심도 없고 아예 타격을 위한 수법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차서는 안 된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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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차기. 타 무술의 하단차기와 같은 형태인데 박종관 선생 저 [전통무술 택견] 에는 장대걸이라고 하여 낚시걸이식으로 상대의 오금을 당기는 용도로 쓰인다고 되어 있다.


결련택견협회의 경우는 몸통을 제외한 발질은 모두 세게 차도 됩니다. 도기현 회장님이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는


“아무리 덩치가 큰 놈도 세게 다리를 까대면 장사가 없어!”


라고 하신 말씀과 더불어 본인이 배우신 것을 토대로 해서 규칙을 정하신 것이죠. 결련택견협회의 경기에서는 세게 차고 싶으면 차고 밀어차고 싶으면 밀어차도 됩니다. 이 경우는 선택이 매우 자유로워 보이지만 이렇게 되면 되려 걸어 넘어뜨리기보다는 세게 차는 것에 치중하게 되더군요. 종국에는 넘어뜨리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지만 일단 그렇게 되기까지 서로간에 세게 까는 행위가 가능한데 이에 대해서 도기현 회장님의 경우는


“택견은 강인한 우리의 무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아랫발을 세게 까는 행위에 대해서는 품밟기를 잘하면 대응할 수 있고 또 아래를 상대가 차는 순간 위를 한방에 노릴 수도 있으니 수련의 차이일 뿐 세게 차도 무방하다.”


라고 말씀하시죠.


사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결국은 같은 목적인데 도달하는 길이 서로 틀린 모습을 보이게 되는 이 밀어차기. 그리고 두 협회의 수장분이 상반된 논리를 펴고 있으니 어느 것이 맞는지는 제가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니기에 판단하기가 어렵군요.


결련택견협회는 세게 깔 수 있다고 해도 택견은 세게 깔 것 없이 쉽게 이기는 방법으로 승부가 나기 때문에 결국은 실력이 높은 택견꾼은 세게 까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걸이나 빠른 윗발로 승부를 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에 완전히 밀어버리는 발질만 한다고 고정관념이 인식된 대한택견협회의 택견꾼들의 경기는 의외로 딴죽수나 윗발질들이 적당한 수준의 타격이 인정되니...


택견배틀에서 김성복, 류대규 선수가 낚시걸이, 딴죽 등 거는 발질을 장기로 쓰는데 류대규 선수는 결련택견협회의 택견꾼이지만 대한택견협회의 광진구 택견대회에도 나가서 좋은 경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또 대한택견협회의 선수들도 세게 찰 수 있는 택견배틀에 나와서 좋은 경기를 보여주죠.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DdasrSZUJeU$
10회 광진구 택견대회 영상

*류대규 선수가 1분 49초~53초에 낚시걸이 승리, 2분 3초~2분 8초에 다시 낚시걸이 승리. 이처럼 택견은 결국 타 격투기처럼 타격으로 인한 KO가 아닌 얼굴을 차거나 넘어뜨리면 손쉽게 이길 수 있다는 점에서 힘 빼면서 세게 찰 필요가 사실 타 무술에 비해서 적다.

결국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 그 종착점으로 가는 길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세게 차도 되느냐 아니면 원래 상대를 다치지 않게 다 밀어차느냐 하는 것은 여러 배운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보아야 결론이 날 것 같군요. 본래 어떻다~라는 전통성 싸움은 꽤나 식상하게 들리겠지만 역시 역사성의 정립은 중요한 것이므로 이것 역시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의 입장인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본래 택견은 세게 찰 수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는 이용복 회장님의 [세게 차서 다치게 되면 노동력의 상실이 일어난다.] 라는 인터뷰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택견을 즐기던 사람들은 일반 서민층이라기보다는 중인 이상의 경제적으로 꽤 여유가 있는 한량층이었고 그런 거의 반건달 같은 패들이 싸움도 아니고 규칙이 정해져 크게 다칠일이 별로 없는 택견을 세게 좀 차다가 다리 멍들고 다치고 그런다고 노동력의 상실이라고까지 할만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택견이 전국의 모든 사람이 즐기던 기예이고 전국에서 폭넓게 하던 기예였다면 농민들도 했다고 생각하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 다치지 않아야 하니까 밀어찼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택견은 서울지역에서 일부만이 하던 한정된 기예였으니까요.

또 대한택견협회에서는 품밟기를 할때 능청이라는 움직임으로 뱃심을 내며 이것을 굼실과 함께 발질로 연결하면 밀어차기가 되어 상대가 맞아도 다치지 않는다고 하는데......능청이라는 움직임은 결국 허리를 집어넣어주는 것이고 허리를 집어 넣어서 발질을 하는 것은 타 무술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듯이 되려 파괴력과 사정거리를 늘리는 수법입니다. 이것이 되려 타격을 주지 않는다고 이론을 주장하니 저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뭐...니가 공부가 덜되서 그런거다!! 라고 하신다면 할말이 없습니다만-_-;;

그런 의미에서 저는 대한택견협회의 밀어차기가 굼실과 능청을 이용한 도괴력을 이용해 상대를 차더라도 전혀 상대가 다치지 않는다고 하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상대를 다치지 않을 정도로 힘조절을 하자] 라는 인식이 밀어차기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박쥐 같은 결론이지만 결국 양쪽 다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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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의 품밟기 논쟁은 언제나 정품이냐 역품이냐를 두고 벌어집니다. 대한택견협회에서는 코리언 게임스의 기사와 송덕기 할아버지의 영상을 토대로 품밟기는 역삼각형 형태가 맞으며 역삼각형이 상대가 보기에는 정삼각형이기 때문에 기본 품밟기는 역품으로 밟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코리언 게임스의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발을 벌리고 서로 정면으로 마주보고 선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의 다리를 걷어올려 차려고 시도한다. 경기자는 각각의 발을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제 3의 지점에 놓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발들은 언제나 3개의 지점중 하나에 놓여진다. 한 사람이 상대의 다리중 하나를 한번 차는 것으로써 경기를 시작한다. 상대는 그 다리를 뒤로 움직이며 교대로 차기를 한다.”


이 기사대로 움직인다면 다리 놀림은 역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경복궁에서 견주기를 시범 보이시는 송덕기 할아버지의 품밟기 모습은 앞으로 한발 내딛는 정품밟기 외에도 역삼각형, 정확히는 등변 사다리꼴의 모습도 보여주십니다.


결련택견협회에서는 이 품밟기는 상대가 앞에 있을 때의 견주기 할 때 품밟기이며 송덕기 할아버지가 가르치시던 기본적인 품밟기는 정삼각형의 품밟기가 기본이었다고 말합니다. 경기에서야 무슨 품을 밟던 기본기는 역삼각형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 보면 대한택견협회 측은 대접이라는 규칙으로 인해 항상 앞발을 앞에 주어야 하기 때문에 정품이 나오는가하면 결련택견협회의 품은 정품처럼 앞발을 주는 것이 아닌 좌우밟기식, 정확하게는 갈지자 품이 나옵니다. 기본기와 경기에서의 응용이 둘다 틀리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결련택견협회의 도기현 회장님은 실력이 좋은 택견꾼일수록 좌우밟기를 쓰게 된다고 해서 한때 논쟁거리가 되었는데 정확히는 좌우밟기가 아니라 좌우밟기처럼 밟는 갈지자 품밟기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좌우밟기식으로 갈지자 품을 밟으면 역시 대한택견협회에서 말하는 등변 사다리꼴 모양이 나옵니다.


그럼 송덕기 할아버지의 영상을 보아야겠죠. (3분 16초부터)


[송덕기 할아버지의 품밟기]

이 영상을 보면 송덕기 할아버지는 몸에 택견이 배였기 때문에 아무 품이나 자유롭게 밟습니다. 순간 앞으로 탁 나가기도 하고 옆으로 나가기도 하며 앞으로 전진 할 때는 갈지자식으로 사각형 모양으로도 보이게 밟으십니다. 또 다리를 순간적으로 뒤로 탁탁 접는 방식도 보여주시죠.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 틀리겠으나 이 영상과 대한택견협회의 품밟기 동영상, 결련택견협회의 품밟기 동영상을 비교해보시면 쉽게 알 수 있겠죠. 충주의 택견협회들도 기본은 정품 밟기이며 거기에 뱃심을 살짝 내줍니다.


다만 대한택견협회의 빗밟기를 비롯한 품밟기들은 기본적인 굼실의 능력 이외에도 능청이라는 움직임을 기르기 위해 뱃심을 내는 식의 동작을 같이 하는 것이고 또 이용복 회장님도 택견 연구 책에서 정확히는 역삼각형이 아닌 등변 사다리꼴의 모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코리언 게임스의 기사도 참조하여 등변 사다리꼴이 아닌 역삼각형으로 기본기를 잡으신 듯 하군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대한택견협회의 품밟기에도 정품은 있습니다. [내밟기] 라는 이름이죠.


어느 협회의 품이 가장 닮았느냐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여기서는 품밟기라는 것만 좀 더 바라보겠습니다. 품밟기를 왜 하는 것일까요? 영상에서 송덕기 할아버지는 왜 저렇게 엉거주춤해 보이는 품밟기를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영상에서는 송덕기 할아버지가 나이가 들어서 동작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저 품밟기가 되려 경기에서 가장 좋은 품밟기라고 보여집니다. 실제로 택견배틀에서 높은 승률을 보여주는 김성복, 배승배, 김성용, 윤홍덕 등의 선수들은 인위적으로 앞발을 내주거나 억지로 춤의 동작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발의 움직임이 저 송덕기 할아버지의 엉거주춤한 듯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품밟기와 모양이 같습니다.

품밟기의 요점은 결국 [굼실]입니다. 다리로 걸고 차고 밀고 하는 기술이 많은데다가 태질도 옷을 잡지 못하기 때문에 무릎의 탄력을 이용한 굼실거림을 최대한 이용해야 합니다. 발만 가지고 하는 경기라면 오히려 저런 움직임이 맞지 않고 차라리 태권도 같은 스텝이 나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택견은 잡아 넘길 수 있는 기술들도 경기에서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무릎을 굼실거리는 것도 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오금의 탄력을 이용해 태질도 해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항상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저렇게 품이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 아래를 까거나 걸어서 넘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다리도 지나치게 보폭이 넓게 움직여서는 안되겠지요.


이 품밟기와 경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다음 번에 택견 경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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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할아버지께서 전수한 택견에는 무기술이 없었습니다. 많은 택견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도 택견의 무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꽤 많은 무술 문파들이 여러 병장기 기술을 하는데 비해서 택견에는 딱히 무기술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송덕기 할아버지가 단봉을 돌리시거나 그랬다는데 그것도 그냥 개인의 기법일 뿐이지 어떤 병장기를 쓰는 기술이 전수되어 온 것은 없다고 보입니다.




요즘 들어 선보이는 충주 쪽의 육모술이나 결련택견협회의 호패술은 최근에 도입된 것입니다.


현대적인 발전의 일환으로서의 무기술의 도입은 역사의 왜곡만 없다면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육모술의 영상을 보시죠.


[택견 기능보유자 정경화 선생의 육모술 시범]

다음은 결련택견협회의 호패술 시범 영상입니다.


[결련택견협회의 호패술 시범]

이 호패술의 경우는 모 무술사이트에 한국의 비전 무예라고 실렸다가 여러 논쟁이 있었습니다. 소림무공과 금강영관을 하는 최종렬 법사는 말하길 이 무기는 한국의 무기가 아니라 소림무공을 하는 허주 스님 유파의 독문 병기인 용비봉무곤이며 한국에서 이 무기의 술기 기법들은 모두 계보를 올라가면 허주 스님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최종렬 법사는 이에 대해서 자신의 까페에 허주 스님과의 문답을 가감 없이 올려놓았으며 최종렬 법사의 반박에 대해서 그 기사는 딱히 계보에 대한 반박은 하지 않고 해묵은 역사논쟁은 그만하고 더 이 무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에 에너지를 쏟자는 말로 관련 기사를 마감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있지만 단태봉의 역사를 파헤치기 위한 글이 아니므로 그것은 관심있는 분들의 몫인 듯 하군요.


[한국의 비전 무기, 호패술?]

[단태봉, 호패술, 승홀곤...역사정립 필요]

[해묵은 역사 논쟁 이제 그만!!]


[최종렬 무예원]


어쨌든 이 호패술이라는 것도 최근에 도입된 것이며 원래 있던 무기술은 아닙니다. 또한 호패술에 대한 책은 발간되지 않았습니다.

무예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추가도 되고 분화도 되었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유기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가구의 권법도 처음에는 투로가 적었다가 시간이 흘러 폭발적으로 많아졌다가 다시 줄어들고 다른 수련법도 받아들여가곤 했죠.


택견만 가지고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고 또 할것이 많은데 쓸데 없이 무기술을 도입한다고, 그리고 그런 종류의 무기술에 열을 올리고 택견은 잘 하지 않게 될 수 있다며 싫어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만 결련택견협회의 경우 호패술이 정규 수련과정은 아니며 관심 있는 사람만 하는 것이고...또 현대 사회가 되면서 여러 무기의 위협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이프 정도의 무기는 위협대상으로 남아 있으니 호신의 차원에서 단봉 종류의 무기술이 하나 정도 도입되어 수련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쓰고 나니 너무 짧은가요? 연말연시라고 생각해주세요...^^ 새해에 복들 많이 받으세요(__) 새해에는 모든 나쁜 것들을 힘차게 발질로 날려버리시지요. 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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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인식되기를


“수박은 손으로 하는 무술이며 택견은 발로 하는 무술이다.”


라고들 생각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수박과 택견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를 기록과 상황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수박이 변천해서 택견이 되었다고 봅니다. 택견이 수박과 연결된다고 보는 이유는 문헌 때문입니다. 수많은 무술가들의 일화가 있지만 최영의 총재의 무력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기록이 주는 신뢰성 때문이지요. 이처럼 기록은 매우 중요한데 재물보에 [과거의 수박이 오늘날의 택견] 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니 그렇게 믿을 수 밖에요.


또한 수박은 기록에는 굉장히 많이 등장하지만 수박희, 수박 경기 등의 구체적인 규칙은 전하지 않습니다. 수박은 딱히 경기에 대한 규칙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 체술을 단련하던 사람들의 종합격투식 힘겨루기였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게 되면 서로 심한 상처를 입기 때문에 규칙 없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맨주먹으로 안면타격을 가할 수 있었던 UFC에서 주먹 골절을 염려해 선수들이 2회 대회부터 알아서 글러브를 끼고 나온 것처럼 수박경기의 경기자들도 그 정도는 알아서 조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그냥 거의 적당한 수준에서 겨루는 자유 겨루기 형식이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얼굴을 주먹으로 정통으로 맞아 상하는 놈이 바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을 수도 있고요.


실제로 극진 공수도의 창시자인 최영의 총재가 직접 지도하던 대산도장(大山道場)에서는 쿠미테(겨루기, 대련)는 안면타격이 금지였지만 1,2대 제자들은 도장에서 안면타격을 연습했으며 맞는 사람이 바보다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대산도장의 수련을 경험한 로야마 하츠오 관장의 극진관 수련생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코뼈나 안면이 상할 정도로 타격을 가하지는 않았겠죠. 수박도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수박을 통해서 군사를 뽑기도 했다고 하며 인적 자원을 그렇게 망가뜨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수박은 손수자(手)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 수박은 손기술 위주의 무술이며 택견은 발기술 위주의 무술인 전통무예의 양대 축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택견에는 손기술도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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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살을 쥐어뜯는 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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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의 혈 누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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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의 급소에 주먹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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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관절을 꺾는 낚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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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어깨로 치는 몸통박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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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로 배를 공격하는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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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얼굴을 공격하는 싸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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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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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을 공격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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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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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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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가슴팍을 치는 벽치기.

출처는 인터넷 검색 및 [한풀 홈페이지]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수박이 변천해서 택견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한데요. 한번 기록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다음은 [중세 조선의 권법] 이라는 글의 발췌입니다. 원작자는 [조희승] 씨이며 제가 본 것은 직접 글을 본 것이 아니라 [택견연구 개정판](이용복 저)에서 자료로 첨부된 것을 읽고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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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수박 기록


고려군대의 매 부대마다는 수박을 특별히 잘하는 패가 따로 있었는데 두경승이 공학군에 배속된 다음 수박을 하는 자의 초청으로 수박대오에 들어갔다는 기록(고려사 권 100 열전 두경승편)


고려시기의 수박경기는 대체로 1대1의 원칙에서 승자전으로 진행하였는데 몇 명을 거꾸러뜨렸는가에 따라 이긴 자에게 상으로 여러 가지 물품을 차등 있게 주거나 무관 벼슬을 주기도 하였다.(고려사 권 12 세가, 예종원년 7월 개축; 고려사절요 권 14 의종 5년 9월)


의종 말년의 보현원에서의 수박경기, 무신정권시기 도방 3번 6번들의 수박경기, 송나라 사람들과의 수박경기의 기록.


이자겸의 정변이 일어났을 때 낭장 이적선이 왕을 부축하여 가는 지석숭을 왕에게서 떼내려고 그의 가슴을 발길로 찼다는 것과 고려시기 반역자 홍다구의 애비 홍복원이 장사들의 발길질에 의해 즉사한 사실


한희유와 위득유의 싸움에서 무관 위득유가 무술에 능한 한희유의 가슴을 두번이나 들이받았는데 희유는 주먹질로 가까스로 득유의 공격을 물리쳤다(고려사 권 104 열전 김방경)


** 이 기록의 경우 [수박] 이라고 기록되어있는 것을 조희승씨가 현대적으로 [무술] 이라고 적었는지 아니면 기록 자체에 [무술] 이라고 되어있는지 불분명합니다. 원문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수박 기록.


방패군의 시험은 수박경기에서 승자전으로 3명 이긴 자를 합격으로 쳤으며(태종실록 권 19 10년 1월 무자) 방패군보다 한층 높은 갑사시험은 먼저 무사들에게 말 타고 활쏘기, 달리면서 활쏘기에 합격한 자를 갑사로 보충하고 여기에서 낙제한 사람이라 해도 수박경기에서 3명 이상을 이긴 자는 합격으로 쳤다(태종실록 권 21 11년 기해)


사적 윤인부가 수박을 잘 씀으로써 호군벼슬(정 4품)을 받음


1419년에는 특별히 고른 50여명의 수박명수들을 모아놓고 경희루 밑에서 경기를 벌이게 해 한유는 4명을 이기고 갑사 최중기는 6명을 이겨 각기 상을 받았고 심지어 8명의 장사를 쳐 이기는 명수도 나타났다(세종실록 권 4 원년 6월 계사, 7월 갑진)


전라도 담양에서 시골 아전들과 관청 종들이 무리로 모아 큰 수박경기를 벌였다는 기록(세조실록 권 9 3년 9월 정축)


종들의 뛰어난 수박재주는 국가적으로 진행되는 큰 수박경기대회에서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우수하며 아주 훌륭하였다.(세조실록 권 42 13년 5월 신미)


1453년 함길도의 유생 신경례가 길에서 사나운 범을 만났을 때 주저함이 없이 달려들어 범 허리를 잡고 대가리를 향해 발길질을 드세게 한 사실(노산군일기 권 7 원년 7월 신미)


1462년 당시 장사로 알려졌던 한봉련이 무사인 겸사복 마홍귀와의 싸움에서 발길질로 심한 부상을 입힌 이야기(세조실록 권 25, 7년 8월 경오)


중 죽림이 같은 중인 희욱을 둘러메친 다름 발길로 힘껏 양 옆구리를 차서 죽게 만든 사실(성종실록 권 88, 9년 4월 기묘)


어우야담, 금계필담의 수박을 겨루는 장면이 상세히 적힘


갑사 이병식이 악질 중을 단번의 주먹질과 발길질로 즉사시키고 또 죽은 중의 복수를 위해 이병식을 찾아온 다른 중을 낭떠러지에서 날랜 발길질로 떨어뜨리려고 한 사실, 병사 우하형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소년 장사가 목숨을 내대고 겨룰 때 바른쪽 소년은 드센 발길질부터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왼쪽 소년장사는 상대방의 공격을 몸을 날려 가볍게 피하였으며 골이 난 바른쪽 소년이 두 주먹을 휘두르며 뛰어들자 왼쪽 소년장사는 두어 길 뛰어오르면서 상단 및 하단 차기를 한 다음 두 손으로 바른쪽 소년을 들어 땅에 메친 이야기, 16세기 신옹담이 8마리의 소를 가지런히 놓고 뛰어넘었는데 마지막 소는 발길로 차서 즉사시킴


*태종실록 권 32, 16년 병자 이에 앞서 윤인부는 갑사 및 방패군과의 국가적 수박 경기에서 이름을 날리어 상으로 쌀과 콩을 각각 5섬씩 받았다(태종실록 권 32, 16년 8월 임술)


이성호(1681~1763)는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유선 권 5의 무예십팔반을 설명하면서 열여덟을 백타라고 하는데 백타란 도수로 서로 칠래기를 하는 것이며 민간에서는 이것을 권법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16~17세기부터 수박을 권법이라고 부르기 시작 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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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기록을 보시면 수박에 대한 것이 매우 다양하게 남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박의 경우는 손을 섞어 싸운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손을 섞는다.] 는 결국 힘을 겨룬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손으로 하는 무술] 이라는 해석보다 더 맞다고 보입니다.


조선 전기, 중기만 해도 수박은 매우 보편적인 기예였다고 보이며 이 수박은 택견과는 달리 지방에서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성호의 기록으로 볼 때 16~17세기부터 수박이라는 이름 대신 권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듯 보이고 이 시기는 바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국방에 대해 굉장한 신경을 기울일 때입니다. 무예제보 번역 속집에도 [권법] 이 나오죠. 그리고 이후 기록에는 수박이라고 하는 용어를 볼 수가 없습니다.(혹시 있을지도 모르죠...다만 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때 아마도 군사무예로서 맨손무예가 [권법] 으로 채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발달된 중국의 병법과 무기술(원앙진, 장도, 낭선, 월도, 곤방 등)을 받아들이면서 맨손무예 역시 수박이 아닌 권법으로 대체한 듯 보이고 이러한 것이 무예도보통지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설 자리를 잃은 수박은 민간으로 그 기법이 이어지게 되어 탁견이 되었고 그 중 서울 지역에서 발을 주로 차는 방식으로 유희화 된 것이 결련택견이 아닐까 하네요.


물론 중국에서 가져온 [권법] 이 군영에서 수련되었더라도 여전히 수박, 탁견을 하긴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증언으로는 민간뿐 아니라 별기군도 택견을 했다고 하며 또한 무예도보통지의 서문에서 예도에 대한 설명을 보아도


“중국에 전해진 조선세법을 제외하고도 군영에서 따로 하던 예도가 있어 예도의 형태가 두형태가 되니 중국에서 되가져온 조선세법을 먼저 싣고 그 뒤에 조선 군영에서 하던 예도 역시 묶어서 총보로 따로 엮어 군영에서 두 가지를 함께 수련하도록 하라.”


라고 했으니까요. 중국에서 되가져온 것은 되가져온 것이고 조선 군영에서 하던 것도 배제하지 않는 치밀함, 그리고 군영에서 자생적으로 하던 우리 예도 기법이 있던 것으로 보아 중국의 [권법] 이 들어왔다고 해서 있던 수박, 탁견을 다 없애버리고 [권법] 만 하진 않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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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의 [권법]
출처는 [푸른깨비의 전통무예연구소]



사대주의 및 실용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맨손무예와 그 명칭인 [권법]을 받아들였지만 예도처럼 수박, 탁견 역시 여전히 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송도수박이라는 무술이 요즘 새로 모습을 보였는데 송도수박은 평안도의 수밝기나 전라도의 태격, 육태안 선생의 수벽치기처럼 개인, 지방에서의 수박 기술이 모여진 것으로 보이고 이도 역시 계승 역사가 확실하다면 수박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수박이 서울지방에서는 탁견, 경기인 결련택견으로 점점 변천한 것에 비해 지방에서는 수박의 기법들이 변천하지 않고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방에는 택견 경기가 없었다는 것과 택견이라는 용어가 없다는 것을 볼 때 수벽, 수벽타, 등의 이름으로 수박의 기법이 택견으로 변천을 하지 않고 남아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역시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기록이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택견도 수박에 뿌리를 두며 수박이 서울지방에서 점점 변천하여 택견이 된 것 역시 거의 확실해 보이며......수박의 기록에도 툭하면 발길질로 차는 모습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지역에서 수박이라는 기예가 수밝기, 송도수박, 수벽치기, 태격 등으로 이어졌다면 서울에서는 수박이 택견으로 이어졌다고 보아야 할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볼 때 수박은 손으로 하며 택견은 발로 하는 무술이라는 것은 제대로 된 구분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그러나 수박이라는 기법이 시대를 흘러 서울지방에서 변천하여 [탁견] [비각술] [각희] 로 많이 비추어진 것으로 보이니...(택견 코리아에 소개된 [택견의 어원] 참조) 구한말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우리에게 인식된


“수박은 손으로 하는 무술, 택견은 발로 하는 무술”


이라는 분류도 역시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가라데와 태권도가 유사해보이지만 경기의 방법이나 주로 사용하는 기법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결국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보자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정도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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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 서문 앞장.
출처는 오마이뉴스 기사 [조선의 협객 백동수]


어정
무예도보통지는 조선의 22대 왕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장헌세자)가 만든 무예신보(지상무예 18가지가 수록되어있음)를 바탕으로 하여 이 18가지 기법에 마상무예 6기(기창, 마상쌍검, 마상월도, 마상편곤, 마상재, 격구)를 실어 집대성한 군사훈련교범입니다.


택견은 민속놀이일 뿐이며 무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택견이 무예라면 왜 당시에 국방에 열을 올리던 정조가 무예도보통지에 택견을 수록하지 않았냐고 말합니다. 나올 수 있는 의문입니다. 실제로 정조시대의 장용영을 비롯한 군사들의 기예수준은 기록으로 볼 때 매우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만큼 정조는 국방에도 남다른 생각이 많았으며 지상무예 18가지에 마상무예를 6기나 추가시켜 굳이 새로 군사교범을 만들게 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택견이라는 기법은 당시에는 맨손무술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였습니다.(정조시대에 출판된 재물보에 의거) 그리고 무예도보통지는 맨손무술 교범서가 아니라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군사들의 개인훈련 교범이었고요. 전쟁에서는 맨손무술이 거의 소용이 없지요. 심하게 말하면 전쟁에서는 정교한 기예조차도 필요가 없습니다. 군사들이 적에게 겁먹지 않을 담력, 힘, 체력이 우선이지 정교한 기술이 우선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줄 뛰어난 전술과 전략이 필요하고요.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권법도 그 점을 분명히 해서 척계광의 말을 받아서 권법이란 병장기를 다루기 전에 몸을 다루는 단련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가 우리나라의 전통무예들을 찾아 수록하는 책자였다면 택견이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무예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예도보통지는 병학지남 등의 병법서와 더불어 전쟁에서 쓰기 위한 기법들을 모아놓은 군사훈련서이며 그렇기 때문에 굳이 맨손무술인 택견을 집어넣을 이유가 크지 않았던 것입니다.


활쏘기가 무예도보통지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활쏘기가 무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당시에는 총이 점점 발달하던 시기였지만 아직까지 활쏘기는 무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술이었으며 무예도보통지 그림 곳곳에도 마상무예 시범을 보이는 군교들이 활과 화살을 장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쓰지 않았다면 패용할 이유도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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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마상편곤, 마상월도, 마상쌍검, 기창. 갑주에 완전무장을 한 기병들이 환도와 함께 활과 화살을 패용하고 있다. 마상에서 쓰이는 활은 보통 활보다 작은 동개궁이라고 불린다.




그러니 택견이 무예도보통지에 실리지 않았다고 해서 택견을 무예가 아닌 민속놀이일 뿐이라고 폄하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입니다. 애당초에 목적 자체가 틀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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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넉넉한 여유를 보이시던 송덕기 할아버지
출처는 네이버 까페



이 점에 대해서는 저도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했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나와서 일치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한풀에서 나온 태견 책에 나온 기술이 정말이더라도 이미 대한택견협회나 충주의 택견협회는 기본적인 품밟기를 바탕으로 경기적인 택견 요소인 구한말의 택견경기에 대한 체계를 잡았으니 원형이 아니라고 몰아붙일 이유가 있냐는 의견도 있었고 반대로 세 단체에서 모두 주장하는 것이 택견은 원래 강력한 무예였다는 것인데 그럼 원형격인 택견 기술이 있다면 당연히 원형은 원형대로 보존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택견은 품밟기가 다라고 송덕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으며 아무리 이용복 선생님이 적게 배웠더라도 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을 신한승 선생님께 배웠으며 신한승 선생님 역시 서울과 충주를 오가며 배우셨지만 70년대부터 배우셨으니 기본적인 부분은 배우셨다고 봐야 하며 그것이 되어있다면 기술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전통이란 발전하는 것이니 다른 기술도 유입되기도 할 수 있을터, 결국 품밟기와 활갯짓 등의 기본 기술만 익히고 있으면 결국 다 같은 택견이니 원형 논쟁으로 일을 크게 벌일 이유가 있냐는 것입니다.

합리성이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택견이 다른 무술과 가장 차별화 되는 것은 품밟기라는 동작과 더불어 경기인 결련택견으로 큰 부상 없이도 무술의 기법을 거의 다 소화하는 훌륭한 대련체계를 만든 것이니까요. 비전화되어 꼭꼭 숨어버린 중국, 일본의 무술들에 비해 택견은 오히려 그 반대로 인해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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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의 급소를 주먹으로 누르는 기술을 시범 보이는 송덕기 할아버지
출처는 [한풀 홈페이지]



하지만 송덕기 할아버지께서 간직하고 있던 기술은 그 기술 자체로도 이미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예를 들어 택견의 손질 중에 장못치기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경기에서는 쓰지 못하는 옛법에 속하는데 이 기술은 주먹을 잘게 쥐고 상대의 T존(양 눈과 코 부근을 말합니다.)을 빠르게 계속 공격하는 기술입니다. 싸움을 좀 한 사람들 이라면 알겠지만 주먹이 두개골을 잘못 치면 주먹 뼈가 부러집니다. 그런 것을 감안할 때 이 장못치기라는 기술은 싸움 기술로 매우 유용한 기술이죠.

이 기술 이름이 왜 장못치기냐 하면 송덕기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긴 못은 망치로 한번에 세게 두들겨 박는 것이 아니라 자잘하게 여러 번 두드려서 박아 넣는 것인데 이 기술이 그렇게 자잘하게 상대를 공격하는 모습이 장못을 두드려 박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장못치기라고 하셨답니다.

이 기술 하나만 보더라도 왜 기술 이름이 장못치기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 배인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무술에도 이런 비슷한 기술이야 얼마든지 있겠죠. 변칙복서들이 쓰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중국권법에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택견이라는 기예에도 이 기술이 있다는 점이며 또한 이러한 기술의 유래와 기법은 우리나라의 택견이라는 무예가 결코 다른 나라의 무예에 대해 꿀릴 것이 없다는 자부심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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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치기. 이 기술은 본때뵈기 12마당에도 들어가 있다.
출처는 [한풀 홈페이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택견을 하는 사람들조차 택견은 원래 기술이 적었으며 세시풍속, 놀이등으로 전해져 우리나라의 강인한 무예는 실전되었다. 라는 류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안 좋습니다.

택견은 결코 기술 수가 적지 않습니다. 추가된 기술 말고도 원래 기술만 해도 다른 무예에 비해 그 수가 적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예용해 위원이나 임동권 박사님, 신문기사들에 기술 수가 적게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송덕기 할아버지의 기술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간단한 예로 택견의 기술이 적다면 왜 예용해 위원이 조사한 송덕기 할아버지의 택견 기술과 신문기사에 실린 송덕기 할아버지의 기술이 다를까요? 그것은 그때그때 마다 다른 기술들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송덕기 할아버지에게서는 단기간에 배워서 기술을 모두 익힐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택견 기술은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링 위의 격투기는 효율적으로 경기에 이기기 위한 기술과 훈련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전통무예를 한다는 사람이라면 그 무예의 기술에 담긴 유래와 사상까지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후배들에게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기술이 송덕기 할아버지의 원형 택견 기술이 맞다면 그것을 무조건 사이비라고 몰 것이 아니라 검증을 거쳐보고 확실하다면 모르는 기술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되는군요.

이 원형의 기술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역시 직접, 오래 배운, 잘게 배운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서로 간에 허물없이 터놓고 증언의 비교도 해보고 기술의 시범도 보이면서 서로가 고이 간직하는 것이 맞다고 보는데 그런 날이 어서 와서 택견이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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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태권도장에서 택견계승회 회원들을 지도하시는 송덕기 할아버지.
출처는 인터넷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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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의 원형은 송덕기 할아버지의 기술입니다. 그럼 택견의 원형인 송덕기 할아버지의 기술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 모습을 많이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영상으로 남아있는 송덕기 할아버지의 택견 모습들은 유튜브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죠. 그리고 문헌이나 여러 증언들을 통해 택견은 발질 위주의 무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택견은 전에도 적었듯이 분명히 무예였으며 또한 수박과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거의 종합격투 정도의 기술체계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송덕기 할아버지는 발질 외에도 꺾는 기술도 많이 가르쳐 주셨고 경기에서는 쓸 수 없는 여러 기술들도 가르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강하게 치고 나온 쪽이 바로 한풀이라는 단체입니다.

[한풀 홈페이지]

한풀은 한국에 대동류 합기유술을 전하신 최용술 도주님에게 9단을 받으신 김정윤 선생이 만든 단체로서 이 한풀이라는 단체에서 2000년 초반에 [태견] 이라는 책을 냈었습니다. 당시 이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배우는 택견의 모습과 전혀 달라 보이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 어떤 이는 이 기술들이 택견이 아니라 한풀의 기술이며 송덕기 할아버지가 돈을 받고 시범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무리입니다. 송덕기 할아버지는 택견에 대해서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분이고 오래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술을 많이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꼬장꼬장한 분이 돈 몇 푼에 한풀 기술을 택견 기술이라고 촬영에 협조한다는 것은 있기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 한풀에서 주장하는 택견의 사상이야 받아들이는 것이 개인 마음이지만 적어도 그 책에 나온 기술은 송덕기 할아버지께서 간직하던 택견 기술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택견이 마을과 마을 간의 단체전으로 즐기던 경기인 결련택견 뿐 아니라 한량들의 싸움 기술로도 쓰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기술들은 여러 형태의 품밟기, 활갯짓, 태질, 꺽는 기술, 택견춤에 심지어는 혈 누르기까지 나옵니다. 특히 여러 관절기와 혈 누르기 때문에 합기유술을 한 김정윤 선생의 기술이라는 말도 나왔었지요.

그러나 이 책을 촬영하기 한참 전인 69년도 정도에 고용우 선생이라는 분이 택견을 배웠는데 이미 이때도 혈 누르기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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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우 선생에게 겨드랑이 급소를 누르는 법을 지도하시는 송덕기 할아버지.

출처는 [위대택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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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태권도장에서 여러가지 꺾는 기술을 지도하시는 송덕기 할아버지. 출처는 인터넷 검색

그러니 적어도 혈을 누르는 기술이나 관절을 꺾는 기술이 택견에 없는 것은 아니었겠죠. 여하튼 저는 2004년 10월에 한풀에서 수련을 한 사범님을 우연히 만나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한풀에서 한풀과 더불어 송덕기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택견 기술도 배우신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도기현 회장님도 만나셨었다는데 도기현 회장님도 한풀의 태견 책에 나온 기술을 다 알고 있으며 다만 이름을 모르고 기술만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면으로 볼 때 도기현 회장님 및 결련택견협회의 초기 선생님들도 역시 송덕기 할아버지의 원형 기술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또 송덕기옹의 원형기술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분이 최근에 떠오른 고용우 선생 이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1969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무렵부터 같은 동네에 살던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택견을 꾸준히 배워왔고 한풀에서 발간한 태견 책에 이준서씨와 함께 모델도 하셨던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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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할아버지와 고용우 선생.
출처는 [위대택견 홈페이지]


이 분은 1985년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현재는 LA에 위대택견 전수관을 운영하고 계시며 제자인 분이 남금재 택견전수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분의 경우는 택견의 마지막이라는 택견춤까지 다 배우셨다고 하더군요.(택견춤은 현재 협회들에서 말하는 본때를 보이는 것과는 틀린, 말 그대로 어떤 형식의 춤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송덕기 할아버지가 시범을 보이셨으니 이런 것도 있긴 있었다고 보아야겠지요.)


[남금재 위대 택견 전수 클럽]


정황상으로 역시 송덕기옹 가까이에서 오래 택견을 배우신 분 같으며 적어도 결련택견협회나 한풀만큼 택견의 원형기술을 잘 간직하고 있으신 듯 하군요.

결련택견협회는 과거 서울 택견보존회-> 서울 택견계승회(택견계승회)-> 결련택견계승회-> 결련택견협회로 명칭의 변경을 해 왔습니다. 결련택견협회는 회장인 도기현 선생님을 비롯해서 이준서, 이호범, 권수일, 최유근 등이 속해있었으며 도기현 회장님은 대학교 2학년부터 유학가기 전까지 약 4년여 동안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거의 매일 같이 다니며 택견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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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계승회 회원들과 송덕기 할아버지. 출처는 인터넷 검색.


처음에는 홀로 배웠으나 이후 사람들이 많아졌고 위에 거론된 분들은 도기현 선생님이 유학을 가시고 나서도 돌아가실 때까지 배웠습니다. 이준서씨는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국가 전수생이었으며 송덕기 할아버지와 같은 동네였고 이호범 선생님 역시 후에 국가 전수생이 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쭉 배웠습니다. 겨울철에도 쉬지 않고 박민 태권도장을 빌려 꾸준히 배울 정도로 열성적으로 오랜 기간 배웠기 때문에 송덕기 할아버지는 기술을 많이 풀어놓으셨으며 현재 문화재 택견 체계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꺾는 기술도 지도하셨습니다.




이 정도가 그래도 비교적 송덕기 할아버지의 택견의 기술을 원형대로 많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언급한 쪽은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배운 사람들 중 [가까운 곳에서] [3년 이상 거의 매일 같이] 배운 분들만 언급했습니다.


기간을 3년으로 잡은 것은 무술계에서 통속적으로 소성(小成)하는데 3년이 걸린다는 것을 기준으로 하였고 가까운 곳과 거의 매일 이라는 제한을 둔 것은 송덕기 할아버지가 기술을 많이 가지고 계셨지만 딱히 체계적인 수련표를 만들어 지도하신 것이 아니었으며 또 기간이 지나서야 한수 두수씩 기술을 가르치셨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거의 매일 접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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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관계 없습니다. 태권도 협회 측에서 태권도의 역사를 소급 적용하기 위해 태권도가 고려때는 수박으로 불리웠고 조선시대에는 택견으로 불리웠다고 하지만 이미 태권도가 일제시대에 일본의 가라데를 배운 사범들이 모여 새롭게 정립한 무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해방 후 이승만 앞에서 당수(唐手: 공수, 가라데와 같습니다.) 시범을 보였더니 이승만이 "저것 택견이구먼!" 이라고 했다고 해서 최홍희를 비롯한 사범들이 택견을 하는 사람을 수소문했고 그래서 오랜 세월을 거쳐 세상에 나온 것이 송덕기옹의 택견이었습니다. 태권도를 만든 주체적인 사람인 최홍희는 그의 저서에서 밝히듯이 택견을 크게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태권도는 자신이 만든 무술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유튜브에 도는 50년대의 태권도 영상과 가라데 영상을 보신다면 일반인이라도 태권도와 가라데 둘이 거의 같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최홍희는 택견과의 연관성을 위해서 태권도라는 이름을 지었고 이에 뇌물을 써서 당수를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만듭니다. 이후 여러 발차기들을 수집, 새롭게 정리도 하고 새롭게 만들기도 하면서 발을 잘차는 한국 민족이라는 타이틀로 태권도의 발기술을 만들기 시작했고 당수냐 태권도냐 태수도냐 수박이냐를 놓고 각 가라데 도장의 관장들끼리 많은 다툼이 있었으나 결국은 태권도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택견은 전혀 개입도 하지 않았고 태권도 측도 전혀 택견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일부 관심있는 사범들 몇몇이 개인적으로 와서 배우거나(박철희 사범, 김병수 사범등) 단체로 얼마간 익히던 것이 다였으며 박철희 사범이 택견무도회를 설립하려 하자 수박도 협회는 되려 방해까지 했다고 합니다.(이때의 수박도 협회는 현재와는 다르다고 봐야합니다. 현재의 수박도 협회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태권도가 택견에 뿌리를 두고 현대적으로 변천한 것이라 해도 50, 60년대 교본에 택견의 아랫발질과 걸이수가 반드시 들어가 있는 교본이 있어야 하는게 그것도 없고 그 이전에 이미 노 사범들은 공통적으로 태권도는 당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태권도만이 아닌 과거의 태권도의 모습도 택견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택견의 여러 발질들의 의도적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우연히 들어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단앞차기, 즉 두발당성이 그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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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수 사범님의 날랜 두발당성. 이 사진은 태권도지 가을호에 실린 것으로 사진의 출처는 네이버 까페
[우리무예이야기] 이며 작성자는 '푸른하늘' 님입니다. 허가를 얻어 퍼왔습니다.


이 발기술은 한쪽발로 상대를 찰듯이 동작을 취하다가 날래게 반대발로 차올리는 것으로 고도의 발기술입니다. 근데 이 기술은 일본의 가라데 기술에는 없습니다. 적어도 집단연무하거나 공식적인 카타에 없는 것으로 보아서 기술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50~60년대 태권도 시범 영상에는 이 기술이 분명히 집단적으로 나옵니다.

이 두발당성은 발기술이 고도로 발달해야만 나오는 기술이며 난이도가 높은 발기술입니다. 이 기술이 가라데에 기원을 두고 있는 태권도에 왜 있는지를 생각하자면 역시 택견의 발기술이 우연히라도 태권도에 들어가기는 들어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태권도의 뒤돌려차기 같은 경우도 택견의 옛법에서 보이기도 하지요. 택견의 대표적인 발질인 곁차기(충주지방에서 부르는 명칭은 '째차기') 역시 초기 태권도 기술에 비틀어차기라도 있었습니다. 철권의 화랑도 이 기술을 쓰지요.

박철희 사범님이 증언하기를 이북은 박치기, 이남은 두발당성이 유명했다고 합니다. 또 종로 깡패였던 김두한씨의 장기가 이 두발당성이었다고 하는 말도 전해져 오고요.(사실 이건 확실하지는 않네요.) 택견이 사직골, 종로, 애오개, 구리개 등의 한량들이 폭넓게 익혔던 기예라는 점과 택견이 놀이로서가 아닌 그들 자신의 싸움기술로도 썼다는 것. 그리고 그 일대는 일제시대에 건달들의 활약 무대였다는 것. 두발당성의 기술이 다른 지방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 때 두발당성이 택견에서 태권도로 유입된 것은 거의 확실하지 않나 싶네요. 종로 건달이기도 했던 사람들도 당수를 많이 했었고 그 과정에서 두발당성이라는 발기술이 유입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처럼 택견의 발기술들이 어찌하다보니 태권도에 들어간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그것이 태권도의 역사를 위로 소급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일단 가장 기본기인 발놀림, 품밟기가 없으니까요. 기술은 무술마다 비슷비슷하게 다 있지만 기본기는 틀립니다. 기본기가 틀리니 태권도가 택견이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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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는 인터넷 검색.


택견 협회는 크게 결련택견협회, 한국전통택견협회, 택견원형보존회, 대한택견협회 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통택견협회와 택견 원형보존회는 같은 충주쪽이고 대한택견협회는 지금 대한택견연맹으로 부르지만 편의를 위해 그냥 협회라고 말하겠습니다.

택견협회가 분열한 것은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배운 제자들의 택견에 대한 가르침과 해석의 차이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택견의 승부방법은 얼굴을 한대 차거나 상대를 넘어뜨리면 이기는 방식으로 세 협회가 동일하지만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품밟기, 활개짓, 발질의 세기 문제입니다.

먼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충주협회의 택견은 택견의 정체성을 무술로서 인식하며 신한승 선생님의 몸짓과 송덕기 할아버지가 보여주던 옛법 시범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리고 신한승 선생님이 중요시 여기시던 활개짓을 매우 강조해서 시합에서도 활개를 크게 크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택견 경기인데 팔을 크게 위로 빙빙 계속 휘두른다면 충주쪽의 택견이죠. 신한승 선생님은 택견을 무술로 인식하셨기 때문에 충주쪽은 그런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택견경기를 하면 원형이 훼손된다고 기능보유자인 정경화씨는 말합니다. 그리고 경기장의 크기도 1회 택견대회의 크기와 같은 큰 경기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품밟기는 정품밟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발질은 다리, 몸통, 얼굴 할 것없이 강하게 차도 무방합니다. 이것은 충주쪽의 택견이 무술에 지향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겠죠.



대한택견협회는 택견을 경기위주로 바라보고 있으며 송덕기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 중 는질러차기라는 것과 품밟기의 대접에 매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상대를 욱하게 차서는 안된다."
"는질러차는 것도 덮어놓고 차는 것이 아니라 서로 품을 밟는 약속에서 차는 거다."(1964년 5월 16일자 한국일보 인터뷰)

라는 식의 증언은 분명히 있어왔고 이에 따라 이용복 회장님은 택견의 움직임을 '굼실' '능청' 우쭐' 으쓱' 으로 상세히 분화시켜서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품밟기도 상대가 공격하기 용이하도록 항상 발을 하나 앞으로 내주면서 품을 밟아야 한다고 경기규칙을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또 기본적으로 수련하는 품밟기는 정품자(品)가 아니라 역으로 밟습니다.

(설명 참조 영상)

발질은 얼굴, 몸통, 다리 모두를 상대를 다치지 않게 밀어차야 합니다. ABO채널의 동양 삼국의 문화 무술편 인터뷰에서 이용복회장님은 서로 택견을 하다가 다치면 노동력의 상실이 일어나므로 다치게 차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죠. 이것에 대한 불확실성과 여러 괴리로 인한 반박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한택견협회는 이러한 는질러차기 방식으로 많은 경기를 거치면서 상당한 노하우를 쌓았으며 오늘날에도 거의 큰 문제없이 경기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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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송덕기 할아버지의 품밟기 파일은 출처가 아마 결련택견협회 원주 전수관의 이재성
관장님 홈페이지로 기억합니다.-_-;

결련택견협회는 무술적이면서도 마을끼리 하던 경기인 결련택견 둘 다를 중시합니다. 택견이 무술이었던 것으로 동네 왈패들이 싸움으로 쓰기도 했다는 것 역시 송덕기 할아버지가 직접 말씀하신 것이었고 명절날에는 놀이로 즐기기도 했다는 것도 역시 말씀하셨으니까요.(송덕기 할아버지는 놀이로 즐기던 택견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셨으나 국아사전 등에는 이것을 결련태껸, 결련태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 단체들의 수장 중에서 가장 오래 배운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해서 많은 증언과 자료들이 남아있습니다.

결련택견협회는 송덕기 할아버지의 증언에 최대한 따라서 몸통만 밀어차고 얼굴과 다리는 세게 차도 무방하며 품밟기도 별다른 제약이 없습니다. 기본으로 배울때의 품은 정품을 밟게 가르치며 정품과 갈지자 품밟기를 기본으로 여러 형태의 품밟기를 선행수련합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증언에는 몇가지 부딪치는 증언의 면이 있습니다. 신문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과 도기현회장님을 가르친 방식이 다르며 일일히 세밀하게 지도를 하는 분이 아니고 제자가 적당한 수준이 되면 다음을 가르치거나 하는 분이어서 신한승선생님의 배를 살짝 내미는 품밟기도 그리 교정을 하시지 않은 듯 합니다.

또 대한택견협회에서 하는 허리를 넣어주는 품밟기의 모습도 경복궁에서 촬영한 동영상에서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모양이 살짝 다르긴 하지만......

활개짓의 경우도 머리위로 번쩍번쩍 드는 활개짓은 본적도 한적도 없다고 하셨지만 한풀에서 발행한 [태견] 책에는 송덕기 할아버지가 하시는 여러 형태의 활개짓이 나옵니다.

그런 것을 종합해 볼 때 구한말의 택견의 방식은 평소에 한량들이 즐기던 방식이나 명절날 단체로 즐기는 방식들이 그때그때마다 규칙이 조금씩 달랐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마치 화투가 동네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송덕기 할아버지는 16살부터 택견을 본격적으로 해서 경기도 나가시곤 하셨다니까 여러 택견에 대한 면을 다 알고 계셨을 것이며 그래서 약간씩 다른 면을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원형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협회들, 그리고 배웠던 분들이 자주 모여 충돌되는 의견에 대한 연구와 조율이 필요할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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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의 대표적인 풍속도인 혜산 유숙의 [대쾌도]
*출처는 인터넷 검색


택견은 무형문화재 76호로 무예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택견이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택견은 전국에 퍼져있는 무예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일단 택견의 기원에 관한 것을 아셔야 할텐데 택견의 기원은 무예가 분명합니다. 재물보의 기희편에 보면 나오는 말이 무술, 수박이 곧 오늘날의 탁견이다. 라고 하였고 송덕기 할아버지도 탁견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때 무술로서의 탁견이 전해지면서 그 수련방법과 대련 방법을 놀이로 즐기게 된 것이 경기화된 택견이며 그 경기 택견을 마을과 마을간의 단체전으로 하는 것이 [결련택견] 입니다.

그러면서 탁견은 무술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대명사에서 점점 특정한 기예를 나타내는 고유명사로서 자리잡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탁견은 품밟기의 움직임으로 보건대, 그리고 수박과의 연관을 생각할 때 상당히 많은 전투적 기법을 포함한 무예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군영쪽에서는 꽤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증언에도 별기군들이 택견을 했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럼 그런 군영의 사람들이 지방으로 가면서 택견의 기법이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입니다.

또는 서울에 살던 택견꾼이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기법이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단 [까기] [잽이수] 등등의 놀이가 지방에서 발견되지요. 까기는 잡기가 아니라 순수하게 발로 상대의 다리를 차서 넘어뜨리는 놀이이며 잽이수는 서로 떨어져서 하는 씨름 같은 놀이입니다. 이외에도 평안도에 날파름이라고도 하는 기법도 발견되지요.

이렇듯이 지방에도 택견과 비슷한 기법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러나 경기로서 즐기던 결련택견은 서울에서밖에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무술도 택견의 기법이고 택견은 무술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니 자신도 택견을 한 사람이다 라는 주장을 하곤 하는데요...

[탁견] 이 경기화되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택견이 된 것이고 그 큰 줄기는 분명히 서울지방에서 행하던 택견과 결련택견이었으며 해동죽지, 코리언게임스 등의 여러 문헌들에 나오는 [택견]이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니 우리에게 인식된 택견이라는 기예는 결국 지방에는 없는, 서울에서만 발견된 그런 고유명사로서의 기예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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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또 대립하는 것이 택견이 놀이인지 무예인지 하는 점입니다. 본래 무예였다고 주장하는 측과 더불어 한반도에는 체계적인 무예가 없었으며 야후의 어떤 블로그에서는 택견은 원래 놀이였으며 무예로서 발전할 기회 역시 없었고 택견이 무예화 되어가는 것은 오늘날의 일이라고 말하는 블로거도 있습니다.

답부터 말하자면 택견은 두가지 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택견의 기원은 무예가 맞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 시대에 이성지(李成之)가 지은 재물보(才物譜)의 기희조(技戱條)에

[卞 手搏爲卞 角力爲武 苦今之탁견] 이라 하였고 이것은 즉

"변, 수박은 변이라고 하고 각력(角力)은 무(武) 라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이것을 탁견이라고 한다."

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박은 분명히 무예이며 당시에는 무예를 통칭하는 단어였습니다. 수박=권법=무예. 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을 탁견이라고 했다고 하니 이는 분명히 택견이 무예에 기원을 둔 것이며 이후 경기(스포츠, 순수 한국어로 놀이)인 결련택견으로 발전을 가져온 것입니다.

또한 '놀이' 라는 말을 걸고 넘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국어에 대한 조악한 식견이라고 보입니다. 영어인 스포츠라고 표현하면 고급스러워보이고 한자인 경기라고 해도 그럭저럭 넘어가는데 왜 순수 우리말인 '놀이' 는 애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천시되어야 하나요? 놀이=경기=스포츠 입니다. 한자어 문화도 우리 말 문화의 일종이며 경기는 놀이보다 좀 더 상위의 개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순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경기라는 어휘와 상위, 하위를 가를 것은 없어보이는군요.

이 탁견을 조선의 한량(왈패, 백수, 딱히 벼슬길에 나가지 않아도 먹고 사는 사람들)들이 익혀서 서로간의 힘겨루기의 일환으로 쓰였으며 이것은 서양의 복싱과도 비슷한 취지인 것입니다. 그들이 글러브에 주먹만 가지고 겨루는 체계였다면 조선은 택견이라는 체계로 서로간의 힘을 겨루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을과 마을간의 단체전인 택견은 '결련택견' 이라고 불렀지요.

가라데, 태권도, 극진공수도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본래는 하나의 고도로 발달된 무도이지만 시합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격투스포츠로도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과 택견의 놀이화는 같은 맥락입니다.(뭐 무도쪽은 시합, 잔심등을 바탕으로 해서 단순한 경기와는 다르다고도 말하긴 합니다만)

그러니 택견이 무예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확실합니다. 택견은 무예이며 이것을 위험기술을 배제하면 그대로 놀이인 결련택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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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잽이 시범을 보이시는 송덕기 할아버지. 격투기술로서의 택견은 이 칼잽이를 제압을 위해 적당한 힘조절이 없이 목을 타격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놀이인 결련택견에서는 상대의 목을 밀어 중심을 허무는 방식으로 쓰입니다.


*무진 운영진 분들의 배려로 객원칼럼에서 택견 Q&A 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1999년 대한택견협회에서 택견을 시작했고 대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충주쪽의 택견 수련도 발이나마 담궈보았고 현재는 결련택견협회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단체에 치중하기보다 객관적으로 택견에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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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합기계 무술의 술기를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만, 여러 종목의 경기 현장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다 보면 의외로 해당하는 기술이 꽤 나오는 것을 보곤 합니다.

다음 동영상은 과거 대한택견협회와 KBS SKY가 주최했던 택견명인전 5회 대회의 슬로모션 하이라이트인데요. 손목뒤집기(손등젖혀꺾기)나 칼넣기, 턱밀어던지기, 어깨밀어던지기 등 합기계 술기와 유사한 기술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초중반에 나오는 김영진 선수의 상대 손목을 양 손으로 잡아서 넘기는 기술은 제가 일본 MMA경기  취재 중에 직접 보기도 했던 기술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합기도 술기라기보다는 유도 빗당겨치기의 변형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삼보에서도 이런 형태의 기술이 있습니다.)

 

 물론 연무나 술기 연습 때와 똑같은 형태이거나 깔끔하게 넘기는 것은 아닙니다만, 술기를 이해하시는 분들이라면 그 기본 원리에서 일맥상통함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아마 실제 상황에서 술기를 쓴다면 저 정도 형태로 걸리겠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다시 말해, 저것이 실전에서의 합기도 술기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합기도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합기도를 배우면서도 술기를 과연 써먹을 수 있을 지 고민하고 회의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니 저런 장면들을 보면서 '아, 저렇게 쓸 수 있겠구나' 내지는 '어떻게 저런 상황이 나왔을까'하는 힌트로 볼 수 있겠다는 것이지요.

비단 택견 뿐 아니라 여러 종목의 경기를 보다 보면 자신의 수련에 힌트를 얻는 경우는 참 많습니다. 사실 저도 그랬고, 또 그랬다는 사람들도 많이 보니까요. 여러 무도의 고단자 심사 과정에 항상 타무도 종목에 대한 연구 고찰이 과제로 들어가있다는 것 또한 그런 의미에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그것을 자신의 기술이나 생각으로 연결시켜 나가는데 활용하느냐 못 하느냐/혹은 안 하느냐가 각자의 몫일 따름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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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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