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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호우가 내릴지도 모른다 해서 걱정하며 와봤더니 예상 외로 햇볕이 내려쬐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안암비각패와 대전 전수관의 경기, 그리고 충주 뿌리와 수원 전수관의 두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네 팀 모두 1패씩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이번 경기의 승자와 패자는 본선진출과 예선탈락이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게 되어서 치열한 경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마가 끝난 후의 주말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렸다. 안암비각패와 대전 전수관이 각각 입장했고 드디어 격돌!! 안암은 주장인 박상혁 선수가 먼저 출전했고 대전은 오효섭 선수가 출전했다. 두 선수 모두 처음과는 달리 머리 모양이 변해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삼손은 머리털을 데릴라에게 홀라당 밀리고 힘을 잃었는데 과연 이 두 선수 중 힘을 잃은 선수는 누구일지......


역시 경기 경험이 많은 박상혁 선수가 노련하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딴죽으로 오효섭 선수의 안쪽 다리를 차며 공략하며 슬슬 길게 경기를 풀어가나 했더니 오효섭 선수의 발질을 잡아채자마자 번개같이 덜미잽이를 하며 눌러 순식간에 1승!!

뒤이어 대전의 선수로 출전한 선수는 함지웅 선수. 키도 크고 체격 자체도 좋아서 박상혁 선수와 대비되어 보였다. 하지만 박상혁 선수는 아예 그걸 자신의 무기로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는지 중심을 더 낮추면서 마치 진흙 위에서 걸음을 옮기듯이 함지웅 선수와 간격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주변을 돌며 낚시걸이와 딴죽으로 간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후려차기를 올려봤지만 신장 차이에 중심을 낮추고 있던 것까지 겹쳐서 불발......


함지웅 선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으며 아랫발질 공격이 들어오면 그 다리를 재빨리 빼며 긴 다리로 후려차기를 하는 등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함지웅 선수의 오른발 후려차기가 스친발로 빗나간 다음 순간, 박상혁 선수가 솟구치며 날치기를 시도했고 그것은 함지웅 선수의 왼쪽 얼굴에 그대로 작렬해버렸다.


템포가 빠른 대전의 막내 오태호 선수가 출전했다. 특유의 빠른 템포의 아랫발질 공격이 시작되었고 박상혁 선수 역시 맞불을 놓으려고 했지만 전혀 다른 리듬의 오태호 선수와 합이 잘 맞지 않는 듯 간을 보고 있는데 박상혁 선수의 발질을 오태호 선수가 잡나 싶더니 오태호 선수는 그 상태에서 다리를 놔버리며 후려차기를 올려 박상혁 선수의 얼굴을 흔들어놓았다. 보통 다리를 잡으면 외발쌍걸이나 칼잽이가 나가는데 그 수를 뒤집은 덕에 박상혁 선수가 미처 대응을 하지 못한 것 같다......알고 했다면 따봉...-ㅁ-


이어 안암에서 황신구 선수가 나왔다. 후려차기의 달인......전적을 보니 승리 기술이 100% 후려차기......뭐야 이거...무서워...-_- 그런 황신구 선수를 맞아 오태호 선수는 마냥 자기 리듬으로 경기를 진행하다가 댓님이 풀어져 버렸다. 잠시 경기가 중단 되고 진영으로 돌아가 대님을 묶는데 대전의 이길순 감독님이 뭐라뭐라 지시하시는 모습이 들어왔다. 독순술 발동!!! ......까지는 아니고-ㅅ- 그냥 뭐 황신구 선수가 후려차기가 주특기인데 신장 차이가 나니까 거리를 주지 말라는 지시겠지 뭐...- -;;

다시 경기가 진행되었고 예상대로 오태호 선수는 바짝 붙어서 각을 주지 않았다. 대전의 선수들은 몸을 옆으로 뉘이면서 차는 후려차기라서 거리가 좁아도 큰 상관이 없지만 황신구 선수의 후려차기를 정석적인 방식이라서 그런지 각도가 잘 나오지 않았다. 전략이 맞아떨어졌는지 황신구 선수가 고전하는 사이 오태호 선수가 그런 황신구 선수의 오금을 잡으며 덜미를 눌러 아까의 빚을 갚았다. 이로써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기세를 더 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안암에서 김지훈 선수가 나왔다. 좀 이른 출전이 아닌가 싶었지만 택견배틀과 같은 단체전에서는 좀 기술이 어설픈 선수라도 기세를 한번 타면 일을 터뜨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일찌감치 그걸 꺾으려는 듯 보였다.

내가 택견배틀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인 김지훈 선수는 오금잽이와 각도가 거의 없는 후려차기 양쪽을 모두 갖춘 선수였다. 오태호 선수가 활개가 좀 내려가는 경향이 있는데다 목으로 피하는 움직임도 거의 없는 터라서 어쩌면 초살 승부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아니나 다를까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지훈 선수의 오른발 후려차기가 정확하게 오태호 선수의 뺨에 작렬했다. 이전의 황신구 선수와는 전혀 틀린 각도의 후려차기에 적응을 하지 못했으니......


대전에서 얼마 후 아빠가 된다는 윤창균 선수가 나왔다. 윤창균 선수의 엎어차기가 굉장히 강력하지만 김지훈 선수는 그걸 잡아채서 넘길 능력이 충분히 된다는 것이 사전 분석이 되었는지 큰 공격은 잘 나오지 않았다. 되려 자잘한 공격과 덜미잽이로 서로 간을 보는 모습을 보니 저러다 제풀에 큰 기술을 먼저 쓰는 쪽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윤창균 선수가 드디어 엎어차기를 작렬시켰지만 김지훈 선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잡아채며 반대 손으로 가슴팍을 밀어버렸고 그대로 승부는 끝나버렸다.


승부의 저울추가 많이 기운 상황에서 대전의 마지막 선수인 장찬용 선수가 출전했다. 김지훈 선수를 포함해서 세명을 이겨야 대전의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라서 부담이 되었겠지만 그런 것과는 별도로 신중하게 경기를 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힘이 좋은 김지훈 선수의 덜미잽이에 거의 넘어갈 뻔 하면서도 다시 중심을 잡기도 했고......순간 빈틈이 보이면 솟구쳐 후려차기도 하는 등 먹이를 노리는 사자 같은 모습...


김지훈 선수에 대한 분석도 있었는지 김지훈 선수가 오금을 잡아채는데 오금은 신경 안쓰고 반대손 칼잽이를 바로 흘려버리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보통 오금잽이는 단독으로 쓰기보다 반대 손 칼잽이나 밀기로 연결하는데 그 손만 흘려버려도 기술은 무위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오금에 신경쓰지 않고 활개를 흘려버리는 모습을 보니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다. 그 상황에서 되려 김지훈 선수가 자신의 직선으로 미는 힘을 역이용당해서 넘어갈 뻔 했다. 대전으로는 아쉬운 상황이었다.


빚을 갚으려는 듯 이번에는 장찬용 선수가 오금잽이를 하며 덜미를 잡아챘다. 김지훈 선수는 재빨리 잡힌 오른다리를 장찬용 선수의 가랑이 사이에 끼우며 방어했고 장찬용 선수는 밀어붙이며 넘기려고 했지만 김지훈 선수는 무리하게 버티지 않고 폴짝 뛰어 뒤로 다리를 다시 짚으며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리고 다시 재개된 경기에서 큰 태질을 하느라 쌍방이 약간 정신의 틈이 열린 그곳으로 아껴두었던 후려차기를 꽂았고 그만 그대로 장찬용 선수는 얼굴에 허용하고 말았다.


보통 이렇게 본선진출이 걸린 상황의 경기는 지루하다는 평이 많은데 오늘은 전혀 그런 것이 없이 양 팀 모두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한 훌륭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적극적인 공격을 할 때 오히려 승리가 가까워지는 법인데 과거와는 달리 이제 택견배틀도 그런 모습들이 나오니 구경꾼으로서는 볼거리가 풍성해져서 좋다.

안암비각패는 이로써 3년만에 본선진출이라는 숙원을 이뤄냈다. 과거 고려대 OB팀인 중구 둘둘치킨 팀으로 시작해서 안암비각패까지, 직장인들, 대학원생으로 이루어져서 운동할 시간이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이렇게 택견배틀에 나오는 것은 그만큼 택견이 재미있고 매력적이라는 것 아닐까. 연습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또 그것을 보며 즐기고 응원할 줄 아는 관중들......

일본의 무도인 대도숙 공도(大道熟 空道)는 40세 이상의 선수들이 나와서 시합을 하는 오야지 배틀(아저씨 배틀)이 있다. 공도의 아즈마 다카시 숙장이 바라는 공도의 모토는 즐거운 사회체육이기 때문에 이런 시합도 가능하다. 택견도 앞으로 다른 대학교 팀들이 이런 OB팀을 결성해서 OB열전 배틀이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 가족들과 즐거운 주말 나들이, 그리고 경기장에서 뛰는 아빠를 응원하는 아이들, 아내......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그러면 나도 내가 좋아하는 택견판에서 계속 즐겁게 할 수 있겠지. -ㅂ-

by 곰=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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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g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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